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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Presentation Paper论文投稿 > 영문논문/英文论文
   
  1. 한국건축은 왜 목조로 되었는가?
  글쓴이 : 운아     날짜 : 09-02-22 22:18     조회 : 9155    
1. 한국건축은 왜 목조로 되었는가?
한국건축은 왜 목조로 되었는가? 한국건축을 소개하는 강의 첫 시간에 물어보는 질문이다.
학생들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당혹해한다. 대학에서 한국건축에 대한 공부는 주로
서양건축을 공부한 이후에 이루어지는데, 석조건축을 주로 다루고 있는 서양건축에 대하여
한국건축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설명이 이루어지곤 한다. 그에 대한 가장 좋은 예가 한국건축은
나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양건축을 살펴보면 건물이 나무로 되어 있더라도 장식은
돌로 된 건물의 흉내를 내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건물은 익산의 미륵사 탑이나 불국사의
석축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돌로 세워져 있더라도 마치 나무로 되어 있는 것 같은 흉내를 내고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우리 눈앞에 보이는 한국건축은 나무로 된 구조체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1999 년 4 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엘리자베스 2 세 영국 여왕은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 봉정사 극락전을 보고 건물이라기보다는 나무로 된 공예품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한국건축과 나무와의 관계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되어져 왔다. 그러나
막상 한국건축이 왜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목조는 건축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치명적으로 불리한 점을 갖고 있다. 우선 물이나
습기에 취약하고, 특히 불에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4 계절의 기후변화를 겪어야하는
우리 가옥에 있어서 재료의 특성으로만 살펴볼 때 물과 불에 취약한 나무는 적당한 재료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불에 취약했던 나무로 된 건물 밑에 불을 집어넣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자고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이는 한국 사람이 아주 무모했거나, 아니면
이를 해결하기위한 특수한 기술을 개발하여야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나무를 고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 1 : 부석사 무량수전의 귀공포 - 육중한 지붕을 받고
있는 공포의 결구체계는 나무로 된 구조체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물과 불에 취약한 나무라는 구조체를 기술적 처리를 통해 극복해낸 우리
조상의 슬기가 들어가 있음을 읽어내야 한다. 과연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처음으로 집을
짓는다고 할 때 물과 불에 취약한 나무라는 재료로 집을 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과연
그렇다면 기후적 요인에 불리한 나무라는 재료를 그토록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 2 : 부석사 안양문의 결구체계의
주고 있는 부석사 안양문 위에서
비봉산 자락들의 중첩된 모습
그림 1 : 수덕사 대웅전 측면도
이용하여 목조의 부드러운 특성을
어떤 학생들은 가공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세공 기술에서 입증한 바가 있다
기술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나라와
서민주택만 목조로 되어 있고
지닐 수 있으나 궁궐 역시 목조로
해서든 어려운 가공기술을 실현하여
궁궐이나 사찰 등에서 오히려 목조의
목조건축로 1972 년 해체수리시
12 세기 또는 13 세기에 건축된
사진 4 : 봉정사 극락전 - 봉정사
당나라 건중(建中)3 년(782
통일시라시대의 구조체계가 연결된
비슷한 시기의 건축으로 알려진
구조적 형식을 달리하고 있다.
발전해왔다.
실루엣 선 - 한국건축의 목가구 결구체계를
소백산맥의 자락을 형성하고 있는 만석산
- 소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인 우미량이라고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수덕사 대웅전의 가구결구체계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 선조의 가공기술은
있다. 지금도 기능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능력을 지니고
궁궐과 사찰 등이 석조로 되어 있다면, 이러한
되어 있다. 가공성 때문이라면 궁궐과
일반 서민주택과의 차이를 나타내려했을
특성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사진 3 : 봉정사 극락전 -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공민왕 12 년(1363 년)에 지붕을 수리했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극락전의 결구체계는 현존하는 중국의
(년)에 축조된 남선사(南禪寺) 대전(大殿)과
형식으로 보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의
수덕사 대웅전(1308 년)이나 부석사 무량수전
. 이렇듯 한국건축의 목조결구체계는 지속적인 변화과정을
그대로 보여
만석산, 매방산, 대마산,
하는 부재를
탑이나 금속
것을 보면 가공
있다. 또 일반
설명이 설득력을
사찰 등은 어떻게
것이다. 그런데
있다.
가장 오래된
다는 기록을 발견하여
최고의 목조건축인
유사한 형식으로
결구체계는 당시의
무량수전(13 세기 초)과는 그
거치면서
사진 5 : 불국사 다보탑 (751 년 추측):
불국사 다보탑은 목조건축의 결구체계를 석조의 성격에 맞추어 번안한 매우 획기적인 작품으로
한국인의 석조에 대한 가공기술을 느낄 수 있다.
사진 7,8 :
사진 7 경천사 10 층 석탑 사진 8 원각사지 10 층 석탑
정교한 10 층의 석탑을 통해 가공 기술은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두 탑의 경우에도 목조 결구체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석조탑의 세부 장식은 당시 목조
결구체계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사진 7 경천사 10 층 석탑
어떤 학생들은 재료를 구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산지가 70%이고, 그 밑에는 많은 화강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히려 쓸만한 나무를 구하는 것
보다 석재를 구하기가 더 쉽다. 우리나라 지형의 70 %를 차지하고 있는 산이 있지만 건물을
짓기 위한 목재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목재가 충분히 자라기 전에
땔감으로 많이 섰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화강석이 매우 훌륭했고 화강석의 생산량도
충분했다.
사진 10 전남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사진 9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진 9,10: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목조건축 기둥의 배흘림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목조기법을 흉내 내고 잇다. 또 기둥을 연결하는 부재인 평방과 창방을 표현하고 있어서
목조탑에서 석조탑으로의 전이과정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화순의 쌍봉사 철감선사탑은
지붕부위의 기와골과 막새기와 그리고 처마의 서까래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석재가 얼마나
자유스럽게 활용되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사진 11. 경복궁 근정전 : 가공 기술의 편이성 때문에 목조 지어졌다면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근정전이 목조로 지어진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궁궐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라면
가급적 어려운 기술을 활용했을 것이고 당시의 기술력으로 석조건축을 축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12.부석사 안양문에서 바라 본 우리나라 산의
모습
사진 12. 부석사 안양문에서 바라본 산의 모습
사진 13.불국사 화강석의 석축
우리나라는 돌이 많기 때문에 돌의 가공 기술은 매우
뛰어났다.
또 어떤 학생들은 기후적 요인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기후적 요인이라는 것도 석조로 되어
있다면 불을 이용하기가 쉽고 돌의 냉한 기운 때문에 여름을 지내기가 더 용이할 수 있었다.
사진 14 장인숙 작 자작나무 - 우리의 환경은 아름답지만 건축용 자재로 쓸 수 있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다면 왜 목조로 그토록 고집했던 것일까?
한국건축에 대한 의문은 여기서부터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 역시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도 하지 못했다. 다만
추론해보건대 나무라는 재료는 지상 위에서 자라면서 지상에서 생활하는 사람에 가장 적합한
재료로 생각했던 것 같다. 즉 사람이 생활하기 위한 재료는 사람과 같은 속성을 지닌 재료가
가장 적합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실체인 몸과 마음을 담을 공간은 사람과
같이 지상에서 숨쉬며 자라고 계절에 따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살아있는 재료를 선택했던 것
같다. 산 사람을 위한 공간에 목조가 사용된 것과는 달리 죽은 사람을 위한 공간은 석조로
구축된다. 돌은 땅 밑에 있는 재료로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 목조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면,
석조는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 생명력을 지닌 산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목조가 사용되었다고
한다면 영원성을 지닌 죽은 사람을 위한 재료로서 석조가 이용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영원성을 지니는 석재를 이용하는 것은 동서양이 비슷하다.그러나
서양이 삶 자체에 영원성을 부여하기 위해 산사람을 위한 집에서도 석조를 선호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윤회사상을 통해 죽음 자체를 인정하고 자신이 살 집
자체도 영원성을 부여하기보다는 생명력을 부여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연속성의 주거를 원했던 서양인들의 주거는 시대마다 독특한 형상을 지니는 양식이 변하여 온
반면 죽음 즉 소명을 인정한 우리의 건축은 목재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형태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진 15 부여 능산리 고분
사진 16 부여 능산리고분의 측면 모습앞에서 언급된 여러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석조로 이루어진 석탑에 있어서도 가급적이면 목조건축의 분위기를 나타내려 하였고 그것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려 하였던 것이다. 2002 년 대전 건축디자인 캠프에는 필란드의 건축가 마랴
사르비마키(Marja Sarvimaki) 박사의 특별 강연이 있었다. 그녀는 이 강연에서 아주 재미 있는
발표를 해주었다. 그것은 서양의 건축은 일반주택에서 경제적인 면에서 목재를 이용하여 주택을
지었는데 다소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부유층에서는 석조건축의 디테일을 목조를 이용하여
표현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석조를 이용하여 목조결구체계를 표현하려고 한 반면
서양에서는 목조를 이용하여 석조의 디테일을 표현하려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산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서 목조를 사용하게 됨에 따라 해결해야할 많은 기술적인 문제를
지니게 되었다. 일단 사람이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과 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여야만
하였다. 물과 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목조가 지속적인 생활을 위한 건축으로서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있던 한국목조건축에는 이렇게 스릴이 넘치는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물과 불 그리고 나무, 서로 상극(相剋)적인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져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해나간다는 것 자체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스릴이
있는 것이다.
그림 2 원시 목조건축의 평면형 진화과정
그림 3 다양한 유형의 원시 주거 (김도경 박사논문 발췌) - 목조로 짓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짐
목조건축에서 물과 불을 다스리는 기술은 온돌과 마루를 통해서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건축의 평면구조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가 온돌과 마루가 하나의 평면 속에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여름을 나기 위한 구조의 마루와 겨울을 나기 위한 온돌이 하나의 평면
속에 통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발견이며 위대한 기술적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생각해서 겨울을 지내기 위한 집과 여름을 지내기 위한 집을 서로 분리해서 별동(別棟)으로
가질 수도 있다. 즉 겨울을 위한 건축과 여름을 위한 건축은 그만큼 많은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의 평면구조는 이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었다. 불을 끌어들이는 온돌은 지면에
밀착한 시스템이고 지면의 습기를 방지하기 위한 마루 시스템은 가능하면 지면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려는 시스템이다. 뿐만 아니라 온돌구조를 갖는 목조 가구의 시스템과 마루를 갖는 가구
시스템은 상당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서로 접근하는 체계가 완벽히 다른 것이다. 두 개의
성격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일본의 건축도 다다미를 갖고
있지만 감히 불을 건축화하여 끌어들이지는 못하고 있다. 목조에 불을 끌어들인다는 관점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해결시켜주지 못한다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상극의 이중적인 성격을 통합하려는 노력은 온돌과 마루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나타난다. 안채와 사랑채를 분리시킴과 동시에 연결시키려는 시도,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연결과 분리, 음양의 대립과 통합, 들어열개 창에 나타난 공간의 확장과 수축 등,
그러나 한국건축이 목조로 이루어지면서 앞에서 언급한 물과 불에 대한 문제처럼 거창한 기술적
해결보다도 세우는 것 자체에 일단 큰 문제를 갖게된다. 먼저 나무로 된 기둥을 땅 밑에 박게
되면 나무 밑둥은 썩게되고 나무 밑둥이 썩게 되면 집이 무너진다. 그래서 기둥의 밑둥은 지상
위로 올라오게 되었고, 그 기둥의 밑둥은 돌로 된 초석에 의해 힘을 지면에 전달하게된다.
우리건축에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는 방법이 한 순간에 당연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발전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초석
밑을 파서 기둥을 박았던 흔적이나 바위를 파서 기둥을 세웠던 부여의 굴립주에 대한 흔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둥이 땅 밑에 박힐 때는 바람이나
옆으로 미는 힘인 횡력(橫力)에 저항할 수 있지만 지상으로 올라올 때는 횡력에는 아주 취약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 모든 부재가 서로 연결과 맞춤으로 구성됨으로서 지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가구가 결구되어 세워질 수는 있으나 횡력에 의해 옆으로 밀리게 되어 불안정하게
된다. 이러한 수평이동에 대한 불안정을 막기 위해서 지붕이 위에서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건축에서 지붕이 전체 입면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한국건축의 특징이라고 이야기되는 지붕선은 이러한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시각적으로
완화시키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뒤에서 다시 설명이 있겠지만 한국건축의 지붕선은 이러한
전체적인 유기적 관계에서 해석될 때 그 본질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한국건축이 목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한국건축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사진 17. 국립공주박물관 사진 18. 부여 화산의 굴립주 흔적정원에 놓여 있는 초석
사진 18. 19. 경기도 안성 청룡사 대웅전 모형 - 한국건축사 수업시간에 이 작업을 한 정춘환
학생(현 경기대 대학원)은 모든 부재를 짜맞추며 모형을 만들었는데 이런 작업을 통해 각 부재의
역할을 명확히 알게되었다고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청룡사 대웅전은 목조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건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4. 안성 청룡사 대웅전 정면도, 측면도, 단면도 - 실제로 축조해보거나 그려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건축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스포츠가 그러하듯이 몸으로 체득을 하면
간결한 논리적 체계에 감탄을 하게 된다.
사진 19. 부석사 안양문의 날아갈듯한 지붕선의 표현 - 지붕선은 그 자체의 멋보다도한국건축이
갖고 있는 구조적 체계와 함께 이해될 때 더욱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김준봉 답변 삭제   09-02-22 23:08
배재대학교 건축학과 김종헌교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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