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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정마저 따뜻하게 피워주는 ‘온돌’
  글쓴이 : 운아     날짜 : 11-01-23 19:34     조회 : 9623    

한국인의 정마저 따뜻하게 피워주는 ‘온돌’

김준봉/사단법인 국제온돌학회 회장/공학박사/법학박사/

북경공업대학교수/한국현대한옥학회 국제회장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따끈한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집 밖이 아무리 살벌하게 추워도 따뜻하게 우리를 감싸주는 포근한 온돌방. 세계에서 모든 국민이 100%온돌방에서 사는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 밖에 없다. 눈 내리는 깊어가는 겨울의 멋스러움 만큼이나 멋이 묻어나는 한옥의 온돌-오천년의 역사가 서린 이 땅 온돌에 살며 뜨거운 찜질방에서 시원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한민족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많은 전통문화가 있는데, 한글 한복 한지 금속활자 고려청자 등 수 많은 것들 중에서 대표적인 우리의 삶의 터전인 한옥이 있다. 그러지만 우리의 한옥 처마곡선이 우리에게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미국인은 미국집이 친근하고 일본인은 일본식집이 중국인은 중국식 집이 자기들에게는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온돌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데, 백남준 선생의 비디오 아트가 세계시장에서 글로벌하게 인정받은 사실은 단지 그가 한국인이고 한민족의 정서를 가져서가 아닌 것처럼 한옥의 온돌은 세계시장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글로벌한 우리의 전통문화이다.


집은 사람이 만들고 그 공간에 사람이 살지만 이미 만들어진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만들고 느낌을 지배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전통은 불편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전통은 편하고 익숙하여 우리가 깊숙이 즐기는 것이다. 사실 전통문화가 있어야 현재도 미래도 존재한다. 우리의 온돌은 이와 같이 편하고 익숙하면서도 품격이 서려있는 우리 한민족의 핵심적인 주거문화이다. 한국인의 따스한 인간미와 정의 근원은 바로 따스한 온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랫목과 윗목이 절묘하게 위계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곳. 바로 뼛속까지 따뜻하게 녹여주는 온돌이 이 추운 날 우리네 마음을 더 따스하게 녹여 주기 때문이다.


이 온돌은 무엇인가? 온돌의 옛말이자 순 우리말은 구들이다. ‘구운 돌’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바닥에 불 구덩이가 지나가는 통로인 ‘굴’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구들은 조선시대 훈민정음 창제 이후 비로소 한자어로 표기되면서 온돌(溫突)이란 말로 표기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일본과 서방의 나라들도 조선의 고유한 온돌을 다른 발로 표현할 길이 없어 'Ondol'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온돌은 구들이고 구들은 온돌로 같은 말이다.


그러면 한민족의 온돌은 과연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을까? 지금까지 현존하는 유적을 토대로 보면 화덕과 부뚜막이 사용된 신석기 시대로 볼 수 있는데, 대략 지금으로부터 최소한3000년 이전쯤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초기 온돌은 지금처럼 고래가 여러 줄로 온방 전체를 데우는 방식이 아니고 부뚜막을 길게 한 줄로 연결한 외줄고래-혹은 쪽구들이라고 함-형태였다가. 1-2세기경 고구려시대에 두 줄 고래 세 줄 고래로 발전되어 7-8세기경 발해시대에 이르러 지금의 여러 줄 고래인 온통구들이 널 리 퍼지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불의 발견과 더불어 인류는 급속한 발전을 하였는데, 특히 불을 난방에 이용하면서 급격하게 주거지를 넓혀갈 수 있었다. 불은 항상 연기와 같이 다니기에 역사적으로 보면 연기와 불을 나누려는 수많은 노력을 해 왔다. 서구 유럽에서도 불과 연기를 나누기위해 창문(WINDOW- 창문의 어원이 연기가 나가는 구멍이라 뜻)을 만들었고, 그 창문을 통해 연기가 나가지만 불행히도 열기도 함께 빠져나가기에 9세기 경부터 등장하는 벽난로는 굴뚝이 없는 형태였다가 그 후 2-300년 지나서야 굴뚝이 있는 벽난로가 만들어 지게 된다. 이러한 굴뚝이 있는 벽난로의 등장은 11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우리 한민족은 불 같은 민족이다. 그래서 ‘물불을 안 가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감기에 걸리면 뜨거운 온돌방에 몸을 지지는 민족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현대 암치료의 획기적인 방법인 ‘온열치료법’을 일찍이 터득하였다고 볼 수 잇다. 따라서 온돌은 단순히 난방시설이 아니다. 취사를 필수적으로 하면서 그 폐열을 난방으로 자연스럽게 이용한 효율적인 방법이다. 또한 불이 꺼지면 금방 추워지는 벽난로와 같지 않고 불 을 땔 때 그 열을 저장하여 불이 꺼진 후에도 다음 불을 때서 밥하기 전까지 충분이 따뜻하게 유지 되는 축열성능을 잘 이용한 방법이다. 더욱이 방바닥에서 직접 데우기 때문에 보일라실이 난방 현장인 방바닥에 설치되어 방 여러 곳을 데우는 세계최초의 중앙공급식 난방장치이다. 전통구들은 구들개자리 고래개자리 굴뚝 개자리가 있는데 열을 가두고 보존하면서 외부로부터 찬 기운을 막아주면서 타고남은 재가 날리지 않고 완전연소하게 만드는 고도의 집진설비이다.


이와 같이 한국문화로서의 온돌은 불의 전도 대류 복사열을 다 함께 이용하는 과학적 난방 방법임과 동시에 ‘두한족열(頭寒足熱)’을 통하여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보건의학적 측면에서도 유리하고, 실내에서 따뜻한 방바닥으로 인하여 신을 벗고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위생적인 난방법이다. 또한 바닥을 뜨겁게 함으로서 실내온돌을 비교적 낮게 하면서도 이불과 요를 바닥에 깔아 방바닥의 온도을 보존하여 실내의 쾌적감을 극대화 시켰기 때문에 실내외 기온차를 줄일 수 있어 난방효율이 높다. 바닥을 통한 복사난방으로 실내의 상하부 기온차가 적고, 서양의 공기조화 난방처럼 실내의 대류로 인한 고기의 흐름이 과도하여 방바닥의 먼지가 상승하여 실내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현상을 방지해 주는 탁월한 난방방법이다.


불은 위쪽이 가장 뜨겁다. 불은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벽난로는 불이 서있어서 ‘선 불’이라 할 수 있고 우리 온돌은 불을 뉘여서 옆으로 기어가게 하기에 ‘누운 불’이라 할 수 있다. ‘선 불’이건 ‘누운 불’이건 불의 윗 부분이 가장 뜨겁다. 그래서 불의 윗부분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 할 수 있는데 벽난로는 그 불의 옆에 냄비를 놓은 격이니 얼마나 한심한가? 우리의 온돌은 불을 뉘여서 그 위에 깔고 앉아 불을 다스리는 형국이다. 이와 같이 따뜻한 온돌은 바닥을 데우기에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다. 온돌의 한국적 아름다움은 에너지 절약과 건강의 측면과 더불어 실내에서의 탈화 좌식생활을 유도하여 정적이고 청결한 문화를 만들었고 실내에서 발보다는 손을 많이 사용하는 정교한 손재주를 활용한 여러 문화를 발달시켜왔다. 더욱이 실내외를 신발의 착화로 구분하여 흰옷과 깨끗함이 우리 민족의 상징이 되었고 이 깨끗함이 오랜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이 되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에도 등록된 온돌은 이젠 세계시장까지 노크하고 있다.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의 유학생들이나 우리 교민들은 추운 겨울에 온돌이 없는 곳에 가더라도 전기온돌매트하나 정도는 가지고 다닌다. 서양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전기 후라이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온돌매트는 그들이 생각지 못한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온돌은 우리 민족 고유의 난방법이고 우리 조상이 3천여 년 전부터 개발하여 물려준 빛나는 문화유산이다. 이제 우리는 온돌의 세계화를 향한 움직임을 본격화하여 온돌 박물관과 온돌 전시장을 만들어 온돌의 종주국의 위상을 새로이 정립하여야 하고 온돌을 하루 속히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여 우리의 빛나는 문화유산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할 때다.


2011.01.14 북경공업대학 연구실에서 김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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