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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  |  김준봉  |  가스  |  %  |  사진  |  %E  2024년 03월 19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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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돌과 보일러의 역사>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08-06-11 17:33     조회 : 25549    
<온돌과 보일러의 역사>
(社)國際溫突學會 金俊峰 會長 甘受

우리는 모두 온돌에서 나서 자라고 온돌에서 생활하다 결국 온돌에서 생을 마감한다. 따라서 우리 한민족에 있어서 온돌과 온돌문화는 김치, 한복, 한옥 등과 더불어 의식주 문화의 뿌리이자 또 하나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한옥에서 온돌이 없다면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과거 김치가 기무치로 일본인들에게 빼앗길 뻔한 일이 있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은 온돌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보면 중국인 학자들이 온돌의 기원을 캉이라고 주장하며 온돌의 뿌리는 중국이고, 중국 북방에서 발생하여 현재는 한반도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다.
발해는 고구려를 이었고 고구려는 바로 한민족의 근원이라는 주장이 우리에게는 문헌이나 유적으로 당연하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영토로 되어 있는 중국 만주 땅에 과거 우리 한민족의 뿌리가 있었다는 것을 단순한 감정적인 부분으로만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결국 이와 같은 논리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온돌문화일 것이다. 우리 한민족이 현재에도 모두 온돌문화에서 살고 있으니, 당시 발해의 유적이 온돌문화의 생활습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과거 온돌난방은 불을 때어 방바닥 아래의 구들을 데움으로써, 이때 발생하는 복사열에 의하여 방안과의 열평형 상태가 유지되도록 하는 난방 방식이었다. 이제는 바닥에 불을 피우지 않고 별도의 가정용 보일러를 이용하여 원하는 난방수의 온도를 맞추도록 되어 있어, 열원을 만들어 내는 수단만 바뀌었을 뿐, 기본적인 온돌난방의 메커니즘은 그대로이다. 다만, 보일러는 그만큼 효율적으로 온돌난방을 구현할 수 있도록 현대화된 기기이므로 그만큼 온돌의 특성과 잘 어우러져야만 하며, 에너지와 환경 등이 보다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보일러가 고효율 성능과 친환경적인 요소와 더불어 최첨단 제어 시스템을 동반하여야만 하는 것이 최근 추세이다.
본 섹션에서는 한글, 금속활자와 더불어 우리 한민족의 과학과 문화의 정수인 온돌의 역사와 가정용 보일러의 흐름을 짚어보고, 향후 이 온돌문화라는 소중한 유산을 보일러의 기술력과 접목, 세계화에 도전하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뛰어난 온돌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1. 한국의 온돌문화

온돌문화의 생성

우리나라에서 온돌이 사용된 최초의 흔적은 신석기시대의 움집화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두만강 유역의 서포항집터이다. 기원전 5000년경에서부터 40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서포항집터는 한 줄로 마련된 다섯 개의 화덕 가운데 양끝의 두 개에는 냇돌을 둘렀으며 가운데 세 개에는 자갈을 깔아놓았다. 이는 양끝에서 불을 지폈다가 가운데 화덕 쪽으로 모아 놓은 자국으로 보이며, 당시의 화덕은 집안의 공기를 데우거나 어두움을 밝히고 음식을 끓이는 따위의 여러 가지 구실을 함께 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이미 일정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온돌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원시의 구들이 복잡한 구조와 과학적 기능을 갖춘 구들로 발전하는데, 수백 년 이상의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보면 최초 한반도 북부의 원시인이 불을 발견․획득하고, 불을 이용하여 최초의 구들을 만드는 데에는 그보다 수십 배에 달하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우리 고유의 온돌문화인 구들이 생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적어도 구석기 시대 이전일 것으로 여겨진다.
정착생활이 본격화된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어서는 굴뚝을 세워 연기를 집밖으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이는 서구의 벽난로 굴뚝의 발명보다 거의 천 년 이상을 앞선 것이다. 이러한 화덕과 굴뚝은 철기시대에 기역자(ㄱ)꼴 구들로 발전하였다. 평안북도 노남리의 집 자리에서 나온 구들은 동쪽의 것은 너비 30cm, 깊이 30cm이고 남북으로 놓인 것은 아궁이와 굴뚝이 딸려 있었다.
방의 일부만 데우는 외구들 형태인 기역자꼴 구들은 고구려시대까지 사용됐다. 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황해도 안악 제3호 무덤 부엌 그림에서는 음식을 끓이는 부뚜막과 난방용 아궁이를 따로 낸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우리 구들이 방 전체가 구들로 되어있는 통구들로 바뀌어 방 어디에나 앉고, 눕는 좌식문화가 시작된 된 것은 고려시대 중기부터이며, 이것은 조선시대 초기이후 중부 이남으로 퍼져 나갔다. 이 때부터 바닥에 장판을 깔기 시작했다. 문헌 상에 '온돌'이라는 말이 처음 출현한 것도 이 무렵(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7년)이다.
구들에 관한 첫 문헌은 7세기 중국의 <구당서(舊唐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당서>에는 “겨울에는 긴 구들을 만들고 그 아래에 불을 지펴서 방을 덥힌다.󰡓 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중국 사람들은 구들을 신기한 발명품으로 여겼다. 지금도 중국의 동북쪽 민가를 답사하다 보면 온돌을 놓은 집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이를 한국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말하는 중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을 정도이다.


  온돌 혹은 구들에 대한 용어 정의

먼저 온돌과 구들에 대한 용어정의를 하면 사전적 의미는 ‘구들’은 ‘방바닥에 골을 내어 불을 때게 하는 장치’또는 ‘고래를 켜고 구들장을 덮고 흙을 발라 방바닥을 만들고 불을 때어 덮게 한 장치’ 등으로 설명되는데 주로 우리 전통방식의 구들 고래와 구들장을 가진  직화(直火) 방식의 난방 방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이와는 비슷하지만 온돌은 단순히 ‘방바닥 밑으로 불기운을 넣어 방을 덥게 하는 장치’로 실의 바닥을 데우는 난방방식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온돌(溫突)'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조선 왕조 실록]에 등장하는데, 세종 실록 7년 을미 7월 병진]이며, 바닥에 본격적으로 장판을 깐 것도 이때부터 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구들’은 순 우리말로 ‘구운 돌’이란 의미에서 발전하였고 지금까지 넓게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온돌은 한자로 따뜻할 온(溫) 돌출하거나 발산한다는 돌(突)자를 쓰는데 이같이 열석 (熱石)으로 쓰지 않고 온돌(溫突)로 쓰는 데는 이미 따뜻한 복사난방의 의미를 두고 조합해 놓은 단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민족은 온돌의 의미를 단순히 돌(바닥)을 뜨겁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닥복사난방과 축열(畜熱)의 의미가 함유되어 있게 용어를 정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쓰는 ‘온돌’과 ‘구들’용어는 서로 같은 의미에서 출발 하였기 때문에 ‘구들’이라는 용어는 과거 전통 온돌 방식의 난방 방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온돌의 경우는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바닥을 데우는 난방방식을 통칭하는 것으로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경우는 온돌(溫突)이라는 용어는 주로 사용하고 있지 않고 과거 전통방식의 구들난방은 캉(炕 또는 훠캉(火炕으로 쓰여지고 있으며 지금의 온수난방이나 전기를 사용한 바닥난방은 띠러(地熱), 혹은 띠놘(地煖)이라고 쓰는데 우리민족이 온돌의 종주국임을 알리고자 한다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온돌(溫突)을 지금보다도 널리 쓰게 하는 것이 우리의 온돌의 우수성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경우 굳이 ‘구들’이라는 용어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이미 외국에 ‘ONDOL’로 알려져 있고 대영백과사전에 등장하는  ‘온돌 溫突 ONDOL’용어를 쓰는 것이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 우리의 한영사전에 ‘온돌’은 ‘ONDOL’로 표기하면서 ‘구들’은 ‘Korean hypocaust’로 표기 되는 곳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인데 ‘하이퍼코스트’는 서양 로마시대에 원시적 바닥 난방 형태인, 그것도 단지 로마시대에만 목욕탕 용으로 잠깐 사용되었던 우리 구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단순한 구조이다. 마루바닥에 수로(水路) 형태로 뜨거운 물을 흘려서 바닥을 데웠던 시설인데, 우리의 전통구들처럼 축열이나 취사 겸용 등의 복잡한 구조도 없고 불기를 직접 보내지도 않은 아주 단순하고 원시적인 구조이다. 이런 ‘하이퍼코스트’를 우리 고유의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첨단화된 구들과 비교하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따라서 영어표기로는 ‘온돌’은 ‘Ondol’로 ‘구들’은 ‘Gudle’로 표기가 되어야 하고 중국어로는 ‘溫突’로 쓰여지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구들의 구조와 난방방식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온돌(구들)을 중요한 실내 난방장치로 계승, 발전시켜 왔다. 바닥난방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인류역사 상 가장 합리적인 난방 방법이다. 온돌난방은 아궁이에 열을 가하면 방바닥 아래의 공간(고래)을 따라 열이 이동하면서 바닥에 열이 저장되고, 이것이 서서히 방열(放熱)되면서 실내를 따뜻하게 유지시킨다. 이는 바로 복사와 전도, 대류라는 열 전달의 3요소를 모두 갖춘 독특한 방법으로써, 인류 역사와 첨단과학을 걷는 현대사회를 통틀어 가장 합리적인 난방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구들의 메커니즘 그림 내용 추가 예정>


한옥의 구조 자체가 구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구들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합리적 구조로 되어 있다. 장마철의 습기는 구들 아래의 진흙이 흡수했다가 건조하면 방출해 방의 습도를 조절해 준다.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는 구들 고래가 막아주고 겨울에는 지열을 고래가 저장해 주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 구들은 불을 지피지 않은 시간에도 축열된 열을 방바닥에서 방열시켜 난방하는 방법으로 고체축열식(고체축열식)에 속한다. 또한 자재는 물리․화학적으로 안전한 자연 광물질이고 마모되어 못 쓰게 되는 법이 거의 없어 영구적이다.
구들은 건강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추구하는 과학적 난방 설비이며,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두한족열(頭寒足熱)의 건강 조건과 습기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습도조절 기능 및 통풍과 먼지 등의 문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과학 구조물이다.
대기오염과 관계되는 환경문제를 보아도 연소된 연기와 열기운이 그대로 배출되는 소각로와는 달리 회굴과 굴뚝개자리 등을 통한 분진의 내부처리 기능 등이 있는 구들은 이미 환경친화적인 과학이 적용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구들의 열역학적 측면을 보아도 그 구조와 재료 등의 특성상 가장 낮은 열손실 계수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많이 쓰이고 있는 온수 파이프 난방 시스템보다도 훨씬 적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쓰이는 단위 면적당 에너지 소비량도 매우 낮다.

Tip. 온돌과 좌식생활

우리말에 ‘드러눕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풀어서 말하면 ‘들어가서 눕는다’라는 의미이다.
일단 실내에 들어가면 눕는(앉는) 문화이기에 그냥 눕는다고 하지 않고 ‘드러눕는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일어나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그냥 ‘일어서다’라고 하지 않고 ‘일어나다’라고 말한다. 이 말 또한 ‘일어서면 나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좌식생활을 해왔고 이와 관련되어 바닥난방(온돌)을 고안하고 발전돼 온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만주 지방의 아파트를 다녀보면 우리 민족들은 어김없이 온돌방에서 생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 한족들조차 온돌방의 매력에 매료되어 온돌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북경과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바닥난방 시공이 붐을 이루고 있다. 과거 난방시설이 전무했던 상해 등의 도시에도 온돌의 붐이 일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2. 한국의 보일러산업

온돌과 보일러

우리의 주택 발전과정을 볼 때 전통적인 난방 방식인 온돌과 서구로부터 유입된 보일러가 처음부터 잘 융화되어 사이좋게 발전해온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급속한 근대화로 오랫동안 온돌의 열원 역할을 해왔던 나무땔감이 점차 사라지고 이 자리를 연탄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온돌문화를 위기로 몰아넣는 계기가 됐다. 연탄의 도입과 함께 방바닥을 직접 가열하는 방식의 레일(rail)식 연탄 온돌과 부뚜막을 갖춘 두꺼비집 식 부뚜막 연탄 온돌이 개발되었으나 이는 가스누출의 위험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
구들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된 연탄 온돌에서는 구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들개자리나, 아궁이, 부넘기 등이 생략됨으로써 일산화탄소 누출로 인한 중독사고를 빈번하게 일으켰다. 궁여지책으로 굴뚝 끝에 가스 배출기를 달아 강제로 유독가스를 배출시켜 다소나마 사고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연탄온돌의 개량은 일종의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이 때 도입된 것이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oyd Wright)가 개발한 ‘온수순환식 바닥난방(Panel Heating)'이다. 이는 온수관이 바닥고래의 기능을 대신하고 직접가열 방식에서 온수를 이용한 간접가열 방식으로 전통 온돌의 직접가열 방식과 차이가 있었으나, 효율적인 바닥난방을 계승한 일종의 절충방식이었다.  온수순환식 바닥난방의 도입과 함께 비로소 우리나라에게 본격적인 가정용 보일러가 등장하기 시작하기 시작했으며, 온수를 순환시키는 파이프 또한 강관에서 동관, 그리고 각종 비닐계 온수전용 파이프 등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이는 우리의 전통적 온돌문화와 서구에서 유입된 보일러가 합리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Tip. 한국식 온돌에 매료된 현대 건축의 거장

온수순환식 바닥난방(Panel Heatimg)을 개발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현대 건축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거장 중의 거장이다. 이런 그가 한국식 구들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라이트가 일본 제국호텔을 지어달라는 건축주의 의뢰를 받고 일본에 머물 때, 한 귀족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귀족의 집은 난로가 없는데도 실내가 매우 따뜻했다. 이에 호기심을 품은 라이트는 귀족에게 어떤 방식으로 난방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일본인은 ‘한국식 구들’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식 구들에 큰 감명을 받은 라이트는 훗날 그의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한국의 방은 인류가 발명해낸 최고의 난방 방식이다. 이것은 태양열을 이용한 복사난방보다도 훌륭하다. 발을 따스하게 해주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난방이다.”
라이트는 미국으로 돌아가 바닥에 깐 돌 사이로 온수파이프를 통하게 하는 패널난방을 고안하여 주택작품 전반에 걸쳐 폭넓게 적용했다. 라이트가 고안한 온수순환식 바닥난방은 훗날 우리나라에 역수입됐으니, 온돌문화의 종주국으로서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1960년대 이후 초기의 주택 설계자들은 아파트가 서구식 입식생활을 전제로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는 관계없이 아파트의 난방방식을 라디에이터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입식생활을 전제로 하는 소파, 침대, 식탁 등의 가구 사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라디에이터를 이용한 방식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정착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에 건설된 민간아파트들은 침실을 온돌로 하고 거실이나 주방 공간에는 라디에이터를 채용하는 혼합식 난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또한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전면적인 온돌방식으로 빠르게 전환됐다. 최근에 지어진 한국의 아파트는 침실이나 거실은 물론 욕실까지도 모든 실내 공간에 온돌난방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이러한 변화는 특별한 계기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한국의 아파트 도입 초기인 1960년대 초반 온돌이 전면적으로 배제됐던 시기로부터 1980년 중반을 지나 침실은 물론 거실, 주방에 이르기까지 온돌이 전면적으로 확대되어 온 정착 과정은 설계자들의 의도나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반대중이 이를 수용해 나가는 자연스러운 선택을 거친 결과이다. 아파트는 분명히 서양에서 유입된 주거형태이고, 실내생활 또한 소파, 침대, 식탁, 싱크대 등 서양식 가구와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수용되고 있지만 온돌은 여러 가지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확대되어 이들과 공존하고 있다. 이는 온돌을 통한 바닥난방의 합리성은 현대생활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강력한 반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용 보일러의 도입과 발전

우리나라에 근대적 형태의 보일러가 도입된 것은 일제에 의해서였다. 당시 보일러는 대부분 서양에서 들여온 증기보일러였으며, 대형건물이나 백화점, 영화관, 호텔, 공장에서 쓰이는 대형 보일러였다. 대개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으므로 내식성이 강한 주철 보일러가 주종을 이뤘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인들이 국내에서 운영하던 공장을 인수하거나 불하 받아 소규모의 보일러공들이 운영됐으나 여러 가지로 미약했던 당시의 산업적 여건 탓에 전근대적 형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 일제가 남기고 간 중고보일러를 수리하는 정도의 기술 수준에서 머무르다 점차로 여건이 개선되고 산업용 보일러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자체적인 보일러 개발이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강압통풍식 Z형 보일러(연관식) 개발 등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지만, 일반 가정에까지 보일러가 보급되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가정은 재래식 아궁이를 통해 난방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가정용 보일러가 도입된 주택은 1961년에 건설된 마포아파트였다. 마포아파트에 도입된 보일러는 연탄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40~60˚C의 온수를 각 방의 패널코일과 방열기(放熱器)에 공급하여 난방효과를 얻는 방식이었다. 방을 순환하면서 냉각된 물은 다시 보일러로 환수되어 재가열됐다. 마포아파트의 보일러는 처음에는 연탄가스의 유출 위험이 크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으나 차츰 그 편리함과 안정성이 인정되어 일반 가정까지 연탄보일러가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Tip. 

1970년대는 당시 주로 쓰이던 재래식 아궁이, 새마을보일러 등 연탄을 열원으로 사용한 온돌난방의 전면적인 개선 또는 폐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됐다. 연탄 온돌의 낮은 열효율, 가스 누출 위험 등의 폐단 때문이었다. 1976년 1월 21일자 <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재됐다.

한국과학원의 배순훈(裵洵勳) 박사팀이 과학기술처에 낸 2차 연도 연구보고서인 <온돌 난방의 열효율 개선 방안>에 의하면 한국 온돌은 아궁이에서 방고래로 들어오는 열량이 발열량의 30% 미만으로 열효율을 발열량의 70% 내지 80%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공기를 데우는 방법'으로의 전환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략>…
  배 박사팀이 제안하는 공기 가열 방식은 구체적인 방법을 앞으로의 과제로 삼고 있지만, 기존 구상은 연소실의 보온보다는 연소실에서 주위로 방출되는 열을 회수하여 이것을 이용, 장공기를 가열하고 가열된 더운 공기를 실내로 송풍하는 방법이다. 배 박사는 미국 뉴욕의 무역회관 냉난방 설계를 맡아 해낸 냉난방계의 권위자이지만 순전한 자연 통풍에 의존하는 한국의 온돌은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계산해서 하던 뉴욕 무역회관의 냉난방 설계보다 온돌 연구가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다며 자연에 의한 통풍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상 조건에 따른 연탄 중독도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가정용 연탄보일러의 등장은 아궁이 또는 연탄 연소부에서 발생한 열이 직접 방바닥 밑의 구들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아궁이식 개량온돌에서 나타나는 연탄가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그러나 연탄보일러는 하나의 보일러로 주택의 모든 방을 난방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신축되는 주택이 아니라면 도입하기 어려운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주택을 완전히 개량하지 않으면서도 주택에 있는 각 방을 난방할 수 있는 보일러가 새로 개발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새마을보일러’이다. 새마을보일러는 주택 전체를 개조하지 않아도 보일러를 설치할 수 있다는 이점을 타고 1960년대 후반부터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그러나 새마을보일러는 온 집안의 난방을 위하여 방마다 개별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에 중앙난방방식을 표방한 연탄보일러가 1970년대 초기에 출현하기 시작했는데 1975년 이후부터는 석유가 보일러의 연료로 도입되면서, 기름보일러 시장이 급신장하기 시작하였다.
기름보일러는 연탄가스 사고의 완전한 예방과 연탄을 갈아주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으므로 이후 지속적인 팽창을 이루어 1980년에는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대도시뿐 아니라 지방의 농어촌까지 확산되자 보일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보일러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업계의 치열한 경쟁은 가정용 보일러의 성능과 안정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가스가 연료로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초부터였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일부 중산층가정이나 요식업소의 취사용으로 LPG가 보급되면서 가스 소비가 조금씩 늘어나는 정도였을 뿐 난방연료의 주류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1979년 2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정부가 에너지다원화정책의 일환으로 가스보급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자 가정의 취사용과 보일러용 연료로 가스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국내에 가스보일러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82년 (주)공영토건(현 대성셀틱, 이하 대성)이 프랑스 샤포토에모리사의 제품을 수입하고부터이다. 당시 수입 물량은 600여대의 미미한 물량이었고 당시는 프랑스의 듀발, 셀틱, 르블앙, 영국의 포터론, 손이엠아이 글로우웜, 독일 바일란트, 융커스, 비스만, 이탈리아의 페롤리, 비크림, 베네타, 네덜란드의 에어버블 유비, 네피트, 스페인의 코인트라, 콜베로 등의 수입제품 위주 시장이었는데 가스보일러 수입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하고 충분한 기술 인력이 없어 연소기술이나 제품 특성 등을 파악하지 못한 채 제품의 안전성 및 품질보다는 판매수익이 높은 제품을 주로 수입, 판매하였다. 1984년 (주)롯데기공(이하 롯데기공)이 처음 가스온수보일러 정밀검사에 합격하여 자체 생산을 시작하였으나 1987년까지는 2만대가 채 되지 않는 시장규모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1988년에 이르러 국내생산량이 10만대를 넘어서면서 국내 가스보일러 시장은 급격한 성장을 보이게 된다. 이는 액화천연가스(LNG)의 국내도입으로 1987년부터 1993년까지 가스 보급이 연평균 18.3% 증가함에 따라 도시가스 보급망을 타고 가스보일러 시장 또한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붐을 타고 국내에 가스보일러를 최초로 도입한 대성과 국내 최초로 가스보일러를 생산한 롯데기공은 1990년대 초반까지 국내 가스보일러 산업을 주도해 나갔다. 또한, 1988년부터 1991년까지의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보일러 전문업체 뿐만 아니라 가전3사를 포함한 당시 생산 및 수입업체가 37개사에 이르기도 했다.
(주) 린나이 코리아(이하 린나이)는 1986년 가스보일러 생산설비를 갖추고 이듬해 1월부터 가스보일러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나 보일러 시장에서의 인지도 및 유통망 등의 문제로 인하여 1990년대 초반까지는 어려움을 면하지 못하였다. (주)경동보일러(이하 경동나비엔)와 귀뚜라미보일러(이하 귀뚜라미)는 보일러시장에서 앞선 기술력과 탄탄한 유통망으로 1980년대까지 기름보일러 시장을 주도하였으나 1988년경부터 본격적인 성장을 한 가스보일러 시장에서는 뒤늦은 시장진입과 출시제품의 시장경쟁력 확보 실패 등으로 인하여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특히 경동나비엔은 1987년 국내 최초로 FF방식의 기름보일러를 개발하여 기존의 FE방식에서 보일러 연소로 인해 실내공기의 산소 부족현상의 문제점을 해소시켜 소비자들로부터 상당한 평가를 받았었다. 이와 함께 가스보일러 시장에서는 1988년 서구 선진국에서 에너지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환경 친화적인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던 콘덴싱 보일러에 주목하여 1988년 네덜란드 네피트(Nefit)사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아시아 최초로 콘덴싱 가스보일러를 생산함으로써 국가의 에너지시책에 부응하고자 하였으나 유럽과 달리 콘덴싱 보일러에 대한 보조금 정책이 없는 국내에서 타사 제품에 비하여 2배에 달하는 소비자가 가격과 당시 일부 동 배관에서 나타나는 이종금속간의 부식문제 등으로 인해 시장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가스보일러 시장 정착에 실패하게 된다.
가스보일러 시장은 1991년 국내생산이 48만여 대를 넘어서고 이후 많은 생산업체들이 생산라인증설과 자동화로 전체 생산능력이 1백만 대를 넘어서면서 업체간 판매경쟁이 치열해질 정도로 이 시기부터 가스보일러는 기름보일러와 함께 가정용 보일러시장을 양분하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수도권의 신도시 개발로 인한 주택시장의 활황도 그 주요한 이유로 대두되었다. 또한, 정부가 1995년부터 강력하게 시작한 에너지합리화정책, 무공해 청정에너지의 대체수요 확대, LNG 보급 확대 등도 가스보일러 성장의 호재로 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기름보일러는 빠르게 위축됐다.
한편 초기 가스보일러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던 린나이는 1993년경 일본의 가스온수기 업체가 가스온수기 생산에 사용하던 기술인 ‘순간식 가스비례제어 기술’을 적용한 ‘비례제어 가스보일러’를 출시하면서 종전의 ON/OFF 방식의 가스보일러가 주종을 이루던 국내시장에서 제품의 차별화에 성공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대대적인 광고를 실시하여 시장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여갔다. 린나이가 가스보일러에 적용한 비례제어기술은 당시 경동나비엔을 비롯한 대성, 롯데기공 등이 생산한 보일러에 사용되던 ON/OFF 기술보다 한 단계 진화된 기술이다. ON/OFF보일러가 설정온도에 이르기 위해 항상 정해진 크기의 불꽃으로만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여 온도편차가 큰데 반하여, 비례제어 보일러는 불꽃의 크기를 50%까지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ON/OFF 보일러와 비교하여 가스비를 다소 절감시키고 온도편차를 줄여 난방과 온수의 편의성을 향상시킨,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인 제품이었다. 덕분에 린나이의 비례제어 가스보일러는 곧 소비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고 인지도와 유통망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업계 최초로 가스보일러 70만대 판매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가스보일러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린나이의 이러한 급속한 성장은 질 좋은 제품만이 소비자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실례였다.
연도생산량성장률Remark19854,003198613,264231.35%198730,805132.25%1월 린나이 가스보일러 생산개시1988100,082224.89%1989235,977135.78%11월 대성 국내 최초로 가스보일러 10만대 보급1990409,00673.32%11월 (주)롯데기공 가스보일러 20만대 돌파1991519,25226.95%1992448,625-13.60%1993646,05244.01%11월 린나이 가스보일러 전자식 가스비례제어기술로 WIPO상수상1994629,918-2.50%12월 대성셀틱 업계 최초 가스보일러 판매 50만대 돌파1995615,151-2.34%12월 (주)롯데기공 가스보일러 50만대 판매돌파1996706,34214.82%10월 린나이 가스보일러 업계 최초 판매 70만대 돌파1997877,58724.24%6월 (주)롯데기공 가스보일러 판매 60만대 돌파(국내2번째)
표 :보일러산업 50년사 발췌, 한국보일러공업협동조합 刊
또한, 귀뚜라미의 경우에도 저가의 저탕식 가스보일러를 지속적으로 개선, 발전시키는 한편, 기존의 기름보일러 유통망을 이용하여 가스보일러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을 점차적으로 높여갔다. 한편 경동나비엔은 1991년에 뒤늦게 일반 가스보일러를 출시하며 다시금 시장 확보에 나섰으나 ON/OFF 방식의 제품이었던 탓에 새로이 출시된 린나이의 비례제어 가스보일러와의 기술적 차이와 가격경쟁력에서는 귀뚜라미에 밀려 가스보일러 시장에서 점유율 3위로 뒤쳐지게 된다.
이에 경동나비엔은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회사의 사활을 걸고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고, 1993년 보일러 업계 최초의 기업공개와 더불어 사내부설 에너지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기업의 구조변화를 시도하면서 가스보일러의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경동나비엔은 1996년, 저가형 일반가스보일러인 GO 모델을 출시하여 1996년에는 9만 여대, 1997년에는 12만 여대를 생산하여 가스보일러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경동나비엔의 지속적인 기술개발은 콘덴싱과 일반보일러 두 가지의 전략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로, 1988년 네덜란드 네피트사로부터 도입한 라디에이터 방식의 콘덴싱 기술을 한국 온돌문화에 적용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얻은 경험과 자료를 토대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와 공동으로 ‘응축잠열회수방식의 고효율, 친환경 가정용 콘덴싱 보일러 개발’을 목표로 연구 진행하여 1998년 2월 한국형 비례제어 콘덴싱 보일러를 개발하였다. 지금은 선진 유럽에서 보편화된 스텐레스 열교환기를 세계최초로 적용하여 98년 ‘국산신기술인증 KT마크’ 획득, 99년 업계최초 ‘환경마크’ 획득, 에너지절약 유공기업 대통령 표창‘수상, ’에너지위너상 및 에너지기술상‘ 수상, ’에너지혁신대상‘ 수상 등 각종 인증과 포상을 수상하게 된다. 두 번째 개발전략은 일반 가스보일러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999년 11월 비례제어기술을 적용한 GOM모델을 새로이 개발하여 일반 가스보일러의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발판도 마련하였다. 이후, GOM모델은 현재까지도 국내가스보일러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고객에게 가장 사랑받는 모델로서 끊임없이 기록을 갱신해 가고 있다. 
한편, 1997년 후반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가정용 보일러시장에서 기름보일러의 위치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기름은 가스에 비해 유가변동에 훨씬 민감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름보일러는 가스보일러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높지 않았다. 신기술이 대폭 적용한 가스보일러의 성능을 기름보일러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였다. 대규모의 시설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가스연료의 특성 때문에 가스용 보일러는 농어촌까지 깊숙하게 침투되지 않았으나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도시에서는 현재 가스보일러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가스보일러 시장은 93년 64만대로 시작하여 99년도엔 100만 대를 육박하는 수준까지 성장하게 된다. 귀뚜라미는 이 시기 강력한 유통 조직망을 통하여 저가의 저탕식 보일러를 보급하면서 가스보일러의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으며, 경동나비엔도 1996년 GO모델, 98년 고효율 친환경 콘덴싱 보일러 KC모델, 그리고 2000년 비례제어 일반가스보일러 GOM을 출시하여 2001년을 기점으로 가스안전공사 자료에 의하면 2002년 결국 가스보일러 생산판매 1위에 등극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최근 가스보일러는 2002년 128만 여대 수요 정점을 기록한 이후 약 100만대 전후의 성숙기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기존에 30여개 보일러가 치열한 경쟁을 한 끝에 현재는 경동나비엔, 귀뚜라미, 린나이와 대성, 롯데기공 및 대우가스보일러 등의 6개사로 재편된 상황이다.
경동나비엔은 1위 달성에 만족하지 않고 이후 4년여에 걸친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고객의 욕구를 철저히 분석한 끝에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온수중심’의 야심작, ‘뉴콘덴싱on水’와 ‘세미콘on水’를 출시하여 기존의 보일러에서는 실현하지 못했던 온수의 질과 양을 모두 만족시키고 중온난방수(40~50℃) 난방을 통한 ‘ASA 쾌적온돌난방 적응제어 시스템’을 적용, 온돌의 축열 특성에 따른 온도 널뛰기 현상을 완벽히 극복하여, 진정 고객이 원하는 온수의 욕구, 최대 열효율 달성에 의한 가스비 절감, 쾌적난방을 구현함으로써 기존 보일러사가 가지지 못했던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제품으로 이제 2001년 이후 명실상부한 보일러 누적 생산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콘덴싱 가스보일러를 개발한 후 그 여세를 몰아 또 한번 아시아 최초로 2003년 11월 콘덴싱 기름보일러를 개발하고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신기술 인정제품인 KT마크를 획득하여 콘덴싱 가스보일러에 이어 기름보일러까지 기술의 우수성을 인증 받았다. 이를 계기로 기름보일러 시장에서도 결국 1위를 함으로써 가스보일러, 전기보일러, 기름보일러, 해외수출까지 모두 1위를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대표보일러기업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온돌 보일러의 새로운 목표- 고효율·친환경

앞서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지만 온돌난방은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인 동시에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합리적인 난방 방식이다. 현대의 온돌이 직접 구들을 가열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온수배관을 이용한 형태로 변화하긴 했으나 복사열을 이용하는 원형은 그대로 유지된 채로 온돌문화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복사난방 방식으로 분류되는 온돌은 사용하는 열원, 즉 연료의 특성에 따라 그 구조와 형식이 조금씩 다르며, 이는 경제적·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구들과 연탄이 혼합된 방식에서부터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스보일러를 이용한 난방까지 온돌은 그 자체로 다른 난방 방식에 비해 과학적이고 친환경적임에 틀림이 없지만, 열원을 무엇으로 사용하는가, 그리고 열효율을 얼마나 극대화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차이가 매우 크게 나타난다. 따라서 온돌이 가진 여러 가지 장점을 최대한 계승하여 보다 적은 연료로 보다 많은 열에너지를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있는 기술력의 확보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정비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수천 년 이상 온돌문화를 이어온 종주국으로서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하여 이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보일러는 가히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온수순환식 바닥난방 보일러에 있어서는 가히 선도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우수한 문화적 배경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제도적 정비나 학문적 뒷받침이 우리나라가 아닌 타 국가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적인 예로 콘덴싱보일러로 대표되는 고효율 보일러 사용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연소 시 발생하는 배기가스에 포함된 잠열을 최대한 이용하는 콘덴싱보일러는 일반보일러에 비해 열효율이 최소 15% 이상 높을 뿐 아니라 유해가스의 배출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환경 훼손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독일·네덜란드를 위시한 유럽 선진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정부 법제화나 보조금 지급을 통해 콘덴싱보일러 보급에 앞장서거나 의무적으로 콘덴싱보일러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전체 보일러 중 콘덴싱보일러의 점유율이 영국의 경우 85%, 네덜란드의 경우 95% 이상에 이르고 있으며, 관련 기술개발 또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콘덴싱보일러는 우리의 온돌문화와 결합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지난 2005년 6월 독일의 칼스루에(Karlsruhe)대학과 DVGW가 공동으로 발표한 전 세계 난방시스템에 대한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연구결과는 바닥난방 시스템 즉, 온돌에서는 콘덴싱보일러가 열효율이 가장 높으며, 내구성 및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바닥난방시 방바닥의 온도는 31℃ 이하가 되는 것(‘난방시스템’, 성순경 著)이 인체에 가장 이로우며, 이에 따른 바닥난방에 가장 적절한 난방수 온도는 40~50˚C로 콘덴싱보일러가 온돌난방에 가장 적합한 난방 기술임을 입증했다.
정작 온돌문화의 종주국으로서의 높은 자부심과 함께 보일러 분야의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콘덴싱보일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왜곡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최근 들어 시장의 흐름을 인식한 업체들이 앞다퉈 콘덴싱보일러를 출시하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콘덴싱보일러를 생산하는 업체가 단 한 개에 불과했다는 사실 또한 깊이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3. 온돌문화의 세계화를 꿈꾸며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온돌

‘쾌적한 온도’는 사람이 생활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조건 중 하나다. 온도는 사람의 행동뿐 아니라 정신적·심리적인 측면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온돌을 이용한 바닥난방이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실내 온도 외에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함께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디에이터나 난로 등과 같이 실내의 기온을 높이는 난방법은 실내 공기를 지나치게 건조하게 만든다. 또한 난방시설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 하고, 벽난로 등과 같이 실내에서 직접 불을 떼는 난방법의 경우 실내 산소의 결핍, 청결 유지의 불편함 등을 야기 시킨다.
온돌을 이용하면 이와 같은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열원이 실외에 있는 바닥난방을 이용하면 실내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내의 습도와 산소량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열원이 내뿜는 유해가스나 연소 후 잔여물질도 온돌을 이용하면 위생적이고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온돌의 장점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해지는 저녁,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고된 들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소위 ‘몸을 지진다’고 하며 아랫목에 피곤한 몸을 누이곤 했다. 뜨거운 구들바닥에 누어 두어 시간 지지면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거짓말처럼 피곤이 풀리면서 몸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풍습은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찜질방’ 문화로 전승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온돌찜질’이 피로회복에 효능을 보이는 것은 단지 기분상의 문제가 아니라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 원래 우리의 전통 온돌은 황토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황토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구들은 가열되면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원적외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전자파의 일종으로서 열전달이 빠른 특성 때문에 온열치료 등 건강요법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온돌은 장점은 한국적 생활방식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한국식 온돌에서 착안하여 온수순환식 바닥난방을 고안해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세계 여러나라의 전문가들이 온돌의 장점에 주목하고 있으며,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 또한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다.

온돌문화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 회복

온돌의 국제적 명칭은 ‘Ondol’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온돌문화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김치와 더불어 온돌은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서의 지위와 가능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로 둔갑하는 위기를 겪었던 것처럼 온돌 또한 중국식 온돌인 ‘캉(炕’)이나 일본의 석조연도(石組煙道)에 의해 정통성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특히 국내에서 발간된 영한사전에서조차 온돌의 영문표기를 ‘Ondol’이 아닌 ‘Hypocaust’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으니 온돌문화의 종주국으로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이포코스트는 고대로마에서 사용되던 바닥난방의 일종이다. 마루바닥에 수로를 설비한 후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는 구조로 온돌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온돌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축열이 불가능하다. 비록 일부의 예이긴 하지만 하이포코스트와 같은 후진적인 방식이 다른 나라도 아닌 온돌문화의 종주국에서 온돌의 대체어로 표기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온돌문화 종주국으로서의 문화적 자긍심을 일반인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앞서 지적한 바 있지만 이와 관련된 기술적·학문적 연구, 제도의 정비가 경쟁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는 점도 한국의 온돌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온돌과 바닥난방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관련기술을 개발하여 실내 난방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응용하고 있다. 바닥난방을 활주로, 도로, 지붕에 쌓인 눈을 녹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열원을 비롯하여 열 전도체, 전열 등 난방관련 재료의 개발도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 08년 3월 중순경 국제표준화 기구(ISO)가 한국의 온돌관련 7개 국제표준안을 채택했다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온돌문화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도 이러한 조치에 대한 후속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돌문화 정착을 위한 정부, 학계 및 관련업계에서 이제는 발 벗고 나서야 할 상황이다.

온돌문화의 핵심코드, 보일러
세계의 영화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는 미국 산업의 경쟁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영화라는 문화상품을 통해 미국적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먼저 수출함으로써  미국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문화는 모든 문화는 산업적 파생력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온돌문화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른바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을 통해 우리의 온돌문화가 다른 나라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온돌문화는 여러 분야의 산업과 연관돼 있다. 특히 장판, 타일 등의 바닥재, 전도재료 등 건축자재와 보일러산업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온수순환식 바닥난방을 이용한 현대식 온돌의 핵심장치라 할 수 있는 보일러 분야의 수출이 오랜 동면기를 벗어나 최근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무역협회가 2004년 이후 3년을 대상으로 집계한 가스보일러 수출 실적 추이에 의하면 한국의 보일러 수출은 매년 최대실적을 갱신하고 있다. 2004년 기준 1053만 달러에 불과했던 가스보일러 수출 실적은 2005년 1263만 달러, 2006년 1561만 달러를 거쳐 2007년에는 2254만 달러까지 불어났다. 이는 07년 기준 전년대비 40% 이상, 최근 3년간 연평균 30% 가까이 성장한 수치이다.
한국 보일러산업이 거둔 이 같은 성과는 우리 고유의 온돌문화가 가진 우수성을 우리와 생활적·환경적 여건이 다른 해외에 토착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효과를 거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온돌보일러의 세계시장 잠재력에 일찍이 주목, 해외진출 공략에 적극적으로 임해온 경동나비엔의 수출 실적은 과거 미진한 국내실적에 비교해 보면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참고 : 무역협회(KITA)에 등록된 1992년~2007년 경동나비엔 가스보일러(HS code : 8403 10 3000)의 누적 판매수량 - 342,849대)
경동나비엔은 지난 1992년 업계 최초로 중국에 보일러를 수출했으며, 그동안 온돌을 기반으로 한 한국식 난방문화를 중국에 소개, 정착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경동나비엔을 중심으로 베이징 등지에서 이뤄진 중국 내 한국식 온돌보일러 보급 실적은 최근 3년간만 해도 5만여 세대에 이른다.
경동나비엔의 미국 현지법인인 경동아메리카의 미국시장 개척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1999년에 최초로 미국에 수출된 경동나비엔의 온돌보일러는 로스엔젤리스의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 차근차근 확대 보급되고 있다. 경동나비엔의 대미 온돌보일러 수출은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생활방식을 갖고 있는 중국과는 달리 대부분의 미국 가정에서는 대부분 대류식 난방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류식 난방방식으로는 바닥을 데울 수 없어 카펫을 깔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미국 내에서 가장 흔한 질병인 알레르기성 천식과 비염을 유발하여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온돌을 사용하면 이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미국 내에 알려지면서 한국식 온돌문화가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와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국가들에까지 온돌이 보급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대단위 아파트 분양에 성공한 동일 하이빌의 사례도 한국식 온돌 수출에 좋은 선례가 된다. 카자흐스탄이 우리나라처럼 방바닥에 주로 생활하는 좌식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 아파트를 건설할 때 한국식 온돌보일러를 채택하여 현지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동일 하이빌은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 6만여 평 부지에 40개동 총 3,000여 가구에 국내업체가 생산한 온돌보일러를 시공했다.

한국식 온돌과 보일러의 미래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한국식 온돌문화의 우수성과 세계화의 가능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온돌문화 종주국으로서의 위치를 계속적으로 유지해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들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
우선 이번에 국제 표준화기구(ISO)가 채택한 온돌관련 7개 국제 표준안을 참고하여 법률적 지원체계를 현대의 추세에 맞게 다듬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유럽에서 태어난 콘덴싱 기술이 한국온돌과 접목되는 과정에서 고효율보일러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온돌문화의 종주국이자 세계적 보일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보다 철저하게 따져보고 보완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콘덴싱보일러를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의 열원과 관련장치, 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학문적·기술적 연구도 꾸준하게 이뤄져야 한다. 온돌은 우리가 종주국이지만 현재 주종을 이루고 있는 가스보일러 및 콘덴싱 기술은 유럽에서 처음 개발됐으며, 아직까지도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의 보일러는 물론이고 전기를 이용한 온돌마루 분야에서 세계 수위를 점하고 있는 일본의 기술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전통 구들이 온수순환식 바닥난방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실종된 여러 가지 온돌의 장점을 현대기술로 다시 복원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바닥 전면을 가열하는 데서 오는 습도조절 기능의 약화, 황토 온돌과는 달리 원적외선을 방출하지 못하는 시멘트 온돌의 문제가 극복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 IT 분야의 기술력과 국내 인프라를 이용한 디지털 기술과의 접목도 계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보일러는 사람이 생활하는 데 있어 쾌적한 실내 환경 조성에 필수적인 설비로 홈오토메이션의 허브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경동나비엔을 위시한 국내 업체에서 시도되고 있는 보일러와 IT기술의 접목이 성과를 거둔다면, 우리의 온돌보일러가 전 세계의 안방을 점령하는 것도 섣부른 꿈에서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언급된 것에 우선하여 우리가 주목하고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한국식 온돌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이를 해외에 널리 펼쳐 알리는 것이다. 온 국민이 인류가 불을 발견한 이래 가장 효과적인 난방법으로 불리우는 온돌을 세계에 전파하는 문화 전도사가 될 때 우리의 온돌문화가 전 세계에서 진정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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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d 답변 삭제   10-11-0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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