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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  |  김준봉  |  사진  |  %  |  %E  |  가스  2024년 04월 20일 토요일
게시판Community论坛 > 온돌계소식
   
  온돌 그 찬란한 구들 문화에 관하여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08-11-23 21:14     조회 : 9921    
이글은  북경공업대학 건축성시학원 김준봉교수님의 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서,

 


모든 저작권은 김준봉 교수님께 있음으로 무단 전제를 금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 '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를 참조하십시요.)

 



 


 '온돌(溫突)'은 구들이라고 불리워온 우리 민족의 고유한 난방방법으로 수 천년간 동빙한설(凍氷寒雪),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우리 한 민족을 따뜻하게 지켜온 전통적인 한옥의 바닥 난방방법의 이름이다. 그러나 요즈음 온수파이프를 이용한 바닥난방이 바로 이러한 전통온돌의 난방방법의 맥을 잇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금의 아파트 난방은 서구의 난방방식중 판낼히팅(panel heating)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며 우리의 전통구들인 온돌과의 관계를 잘 모르고, '구들장'을 한창설명 해야 어느 정도 이야기가 통한다.

 


아래의 글들은 우리의 전통온돌인 구들의 구조 및 작용원리, 구들의 발달과정 및 우수성, 그리고 구들과 우리 한민족의 전통주거문화인 한옥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전통 주거난방 문화와의 관계에 대하여 재조명해보는 것이다. 

 



 





1. 용어의 정의에 대하여-'구들'이란 이름과 '온돌(溫突)'

 



 


구들이나 온돌은 사실 같은 것이다.

 


다만 구들은 우리 민족이 수 천년간 불러온 순수 우리말 이름이라는 것이며, 온돌

 


(溫突)은 아직 우리의 문자가 따로 없던 시대에 식자(識者)들이 구들 시설을 글 속

 


에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름으로 보인다. 그래도 우리 민족 대다수는 구들

 


이라 불렀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낯선 말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은 사실 구들에 대해 별다른 관심 없이 조상 대대로 사용해 오기만 하였

 


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의 관심과 더불어 비로써 조금씩 학문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고, 그 후 땔감 부족과 함께 대체연료 및 에너지 효율화에 관심

 


을 갖기 시작하면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학문적으로 취급되다보니 고문헌

 


을 찾게 되고, 당시에는 한자의 사용이 학문적으로 우대되기도 하던 시대여서

 


온돌이란 말이 점차 구들이란 이름대신 자리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민족·국사학

 


자 손진태 선생(1900∼?, 6·25때 납북)은 구들의 어원을 '구운 돌'에서 찾고 있으

 


며 '구돌', '구둘' 등으로 변하며 '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발전된 것으로 추정한다.

 


아무튼 구들은 처음부터 구들이라 불리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러한 구조가 생겨

 


날 때의 이름에 뿌리를 둔 것이라 할 수 있고, 우리 민족언어와 함께 발전되어온

 


이름이라 할 수 있다. 

 



 


2. 구들의 구조와 작용원리

 



 


구들은 방바닥 밑으로 불기(연기+열기)를 통과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항상 상승

 


하려는 열기로 방바닥을 데우고, 방바닥은 다시 열교환에 의하여 실내공기를 따듯

 


하게 하는 비교적 간단한 자연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구조는 크게 아궁이, 고

 


래, 굴뚝의 세 부분으로 구분되나 그 외에도 의미 있는 기능을 하는 요소들이 많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아궁이: 아궁이는 누구나 알다시피 불을 때는 곳으로 대개는 부뚜막을 형성하

 


여 솥을 앉히고 취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 불목: '불목'은 아궁이와 고래 사이에 있는 일종의 턱으로 연기가 고래로 잘 빨

 


려 들게 하는 기능을 하며, 좁혀져 있어서 목과 같은 기능을 한다는 의미에서 불목

 


이라 하며, 또한 불이 넘어가는 곳이란 점에서 '부넘기(사투리로 부넹기)' 또는 '불

 


고개'라고 하기도 한다.

 



 


● 고래: 고래는 방바닥 밑의 연기가 지나가는 통로로서 구축형태에 따라 줄고래,

 


허튼고래, 부채고래, 꺾은고래, 줄고래와 허튼고래를 섞어 쓰는 혼합고래 등으로

 


구분한다.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쓰인 고래는 줄고래 형식으로, 이것은 굴뚝의 위

 


치를 원하는 곳에 둘 수 있는 방식이며 또한 연기를 원하는 곳으로 보내기에 유리

 


하여 방을 골고루 따듯하게 하는데 유리한 방식이다. 제주도 같은 곳에서는 굵은

 


잡석들로 바닥을 엉성하게 채우고 구들장을 ?어 제대로 된 통로의 형성 없이 돌

 


들의 틈 사이로 연기가 지나가게 하는 일종의 '멍텅구리 고래'도 있다.

 



 


● 구들장: 구들장은 고래를 덮고 방바닥의 바탕을 만드는 평평한 돌로, 지역 자연

 


여건에 따라 냇가에서 평평한 돌들을 골라서 쓰거나 암산에서 떼낸 얇은 판석이

 


쓰이는데 이 일을 "구들장을 뜬다"고 말한다.

 



 


● 개자리: 개자리는 일반적으로 고래 끝 부분에 있고, 고래방향에 대하여 직교

 


(直交)하는 고래 보다 깊이 파인 연기의 통로로서 여러 고래로부터 오는 연기를

 


모아 굴뚝으로 내 보내는 역할과, 연기의 역류와 빗물의 유입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 굴뚝개자리: 굴뚝개자리는 굴뚝 바로 밑의 깊이 파인 부분으로, 역시 연기의 역

 


류를 방지하고 굴뚝 속에서 떨어지는 재를 받아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 굴뚝: 굴뚝은 연기가 배출되는 부위로 함경도 지역에서는 '구새'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수직으로 세워져 있지만 따로 수직적 형태를 갖추지 않고 집의 기단

 


머리에서 하나의 '구멍'으로 끝나는 특이한 것도 있다. 형편과 신분에 따라 굴뚝은

 


재료와 모양이 매우 다양하여 돌과 벽돌로 쌓은 것, 판자로 만든 것, 오지 토관을

 


이용한 것, 피나무 껍질을 원통형으로 통째로 벗겨 만든 것, 통나무 속을 파내거

 


나, 아예 오래되어 속이 빈 통나무를 이용한 것 등이 있다. 때문에 함경도 지방에

 


서는 굴뚝을 '구새통'이라 하는데 살아있는 나무가 속이 비어 가는 것을 "구새먹는

 


다"고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 방바닥: 고래를 덮는 구들장 위에는 짚을 썰어서 섞은 진흙을 덮어 방바닥이 평

 


평하게 고르고 미장을 한다. 이때 진흙에 소털, 찹쌀가루 등을 섞어서 접합력을 높

 


이고 바닥이 트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불을 지피며 며칠 말리고, 마른 다음에

 


자리를 깔거나, 초지를 바르고 장판지로 도배를 한다. 그 다음 불린 콩을갈아 들기

 


름을 섞어 무명자루에 넣고 문질러 장판에 기름을 먹이면 우리의 정서에 익은 은

 


근한 노란 색의 장판방 바닥이 완성되는데, 이 기름먹이는 과정을 '콩댐한다'고 한

 


다. 신시대에 들어서는 콩댐대신에 페인트나 니스를 많이 칠하였는데 페인트는 오

 


늘날의 PVC 계통의 장판과 마찬가지로 바닥의 미세한 구멍들을 막아 옛날 방식보

 


다 인체에 좋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 구들장이: 불을 다룬 장인: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대개는 직접 구들을 만들었

 


다. 그러나 고을마다 동네마다 구들을 잘 놓는 것으로 정평난 사람들이 있어서 이

 


곳 저곳 불려 다녔는데 이들을 '구들장이(구들쟁이)'라 했고, 그들의 경험과 비법

 


에 따라 난방성능에는 많은 차이가 났다. 구들장이들은 옛날방식으로 열역학을 잘

 


이해한 중요한 기술자들이었으며, 불과 연기를 잘 다스린 사람들이었다.

 



 



 


3. 구들의 역사

 



 


구들은 언제부터 쓰여졌을까?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구들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물어 보면 할아버지는 "그놈 별것 다 물어보네?. 언제 긴 뭐 언제야,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부터지"라고 대답했다. 우리네 어른들은 아주 오래된 일을, 특히 사안에

 


대하여 잘 모를 때, 흔히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그렇다. 구들의 역사는 아주 길다.

 


그러나 구들은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보다도, 만약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면, 훨씬 더 오래되었다. 왜냐하면 담배는 콜럼부스가 1492년 쿠바에 상륙했

 


을 때 처음으로 원주민들이 담뱃잎을 말아 피우는 것을 보면서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1590년경에 일본에, 그리고 한국에는 1620년경에 일본에서 전해졌다

 


고 문화사에 기록하고 있으니까 오래되긴 했지만 380년 정도밖에 안되고 구들은

 


늦어도 기원전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구들의 발전과정

 


추적은 수경주(水經注), 구당서(舊唐書)등 중국 쪽에서 기록한 몇몇 고문헌과 한?

 


국 쪽 문헌, 그리고 고고학적 발굴자료가 근거가 된다. 이들 제 자료들을 분석, 종

 


합해보면 구들은 한반도 북부나 과거 한동안 역시 우리조상들의 활동무대였던 만

 


주일대에서 늦어도 기원전 3세기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약 10세기경에는

 


한반도 전역으로 전파되어 '민족의 난방법'이 된 것으로 믿게 한다. 초기의 구들

 


은,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는이르지만, 부뚜막의 연장에서 비롯된 듯 하고, 처

 


음에는 한 줄의 고래로 시작되었다가 벽을 따라 ㄱ자 모양으로 연장된 고래로

 


발전된 듯 하다. 또한 그러한 시설의 이점을 깨닫게 되면서 점차 두 줄 고래 또는

 


세 줄의 고래로 발전하였다가 끝내는 대 여섯 고래를 두고 방 전체를 난방하게 된

 


듯 하다. 그러한 발전과정을 거친 구들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한 아궁이로 방

 


두 칸을 난방하는 것은 보통이고 세 칸까지 난방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되었다.

 



 


4. 유럽인들의 추위극복

 



 


우리는 구들의 우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조상 대대로 사용하기만 해왔다. 그러나

 


구들은 여러모로 매우 우수한 난방방법이며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난방법이

 


다. 그러한 평가는 타문화에서 사람들이 추위를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그리고 어

 


떤 난방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한된 지면과 시간

 


관계상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유럽의 사례를 잠시 살펴볼 필요

 


가 있다. 독일에서 프랑스의 왕가로 시집가서 공작의 부인이 된 Liselotte는 1695

 


년 2월 3일에 고향으로 쓰는 편지에 "왕의 식탁에서도 물과 와인잔의 와인이 언

 


다"고 적고 있다. 왕이 사는 곳이니 땔감도 충분하고 대개 방에 벽난로가 하나씩

 


있었지만 크고 높은 궁전의 방들을 덥히기에 벽난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침대에 "개 여섯 마리를 데리고 잔다"고 편지에 쓰고 있다.

 


1700년대 중세 유럽의 부인들은 속에 숯불을 넣은 작은 기구를 치마 속에 넣고

 


앉아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였다. 그리고 귀부인이 교회나 성당에 갈 때는 하녀

 


가 그런 것을 들고 따라가서 주인마님이 자리를 잡고 앉으면 덩그러니 부풀려진

 


치마 밑으로 그것을 밀어 넣어주었다. 고딕 성당 공간은 매우 높고 난방이 되지 않

 


았으므로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열기구를 매일 여러 시간 치마 속에 사용했으므로 그 숯불에서 발생하는 가스가

 


여성의 자궁에 해롭게 작용해서 임신이 되지 않고 구토와 실신하는 일이 잦게 하

 


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얼마큼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것은 당시의 한 의사(醫師)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렇다. 그런 기구들은 여러 가

 


지 형태가 있어서 침대 속이나 침대 밑에 놓기도 하였다. 유럽의 어떤 지방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러가기 전에 기왓장이나 돌을 빵 굽는 오븐 속에 넣고 달구

 


었다가 침대 속에 넣어서 침대를 미리 따듯하게 하기도 하였다. 서양인들은 오랫

 


동안 연기(煙氣)와 함께 생활했다. 유럽의 집들에 제대로 된 굴뚝이 등장한 것은

 


대체로 18세기 전후이다. 그때까지 집 속에서는 대개 모닥불 형태의 불이 사용되

 


었고, 연기는 처마 밑의 틈이나 출입구를 통하여 적당히 빠져나갔다. 그러다가 모

 


닥불이 있는 방 위로 방 전체를 덮는 크기의 깔때기형 배연(排煙)시설이 나타나 어

 


떤 것은 지붕 전체가 연기를 모아 밖으로 내보내는 깔때기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

 


만 서양의 집안에서 연기는 오랫동안 매우 고충스러운 존재였다. 유럽의 11세기

 


속담으로 '집에서의 삼대악 (三大惡)'이란 것이 있었는데 그 첫째는 '새는 지붕'이

 


요 그 둘째는 '바가지 긁는 마누라'였다. 바가지 긁는 아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제였던 모양이나, 그 세 번째 악(惡)에 주목한다. 그 三大惡의 세 번째 악은 바로

 


집 속의 '연기(煙氣)'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우리에게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것

 


이 있었듯이 이 유럽의 속담은 삼거지악(三去之惡)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 경우 창문(窓門)은 '연기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창문을 뜻하는

 


"window"라는 말은 연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마 밑 등을

 


통하여 적당히 빠져나가던 연기는 사람들에게 늘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벽에 조그만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이 구멍은 중세 西게르만 어(語)에서 '바람의

 


눈'이란 의미로 "Windauge"라 했고, 옛 아일랜드 말에서는 "vindauga"라 했는데,

 


그것이 나중에 현대 영어의 "window", 덴마크어의 "vindue"라는 단어로 발전되었

 


기 때문이다. 요즈음 컴퓨터의 운용체제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Window

 


95", "Window 98"은 그런 연유에서 '연기의 손자'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인

 


들이 가졌던 난방의 종류는 대개 서너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인류가 불을 알기

 


시작한 원시시대부터 사용해오는 '모닥불'형식이 있고, 10세기 경부터 발전한 개

 


방형 '벽난로'와 독일과 알프스 지역에서 오늘날에도 볼 수있는 폐쇄형 난로인

 


'카헬오펜'(타일을 붙인 난로)가 있으며, 15세기 중엽부터 발전한 철제난로종류와

 


오늘날 많이 쓰는 '라지에이터'로 구분할 수 있다. 카헬오펜 역시 10세기경부터 발

 


전하였는데 처음에는 진흙과 돌, 나중에 벽돌 등으로 쌓았는데 후에 깨진 접시들

 


을 겉에 붙이다가 타일을 붙이게 되었다. 

 



 



 


5. 구들의 우수성

 



 


구들의 발전과정, 그리고 그 구조 및 작용원리를 살펴보면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얼마나 우수한 문화유산을 물려받았는가를 알게된다. 그 우수성은 특히 서양에서

 


의 주거문화와 난방방법의 발전과정을 개관하고 비교해서 볼 때 더욱 돋보인다.

 


그리고 많은 특징들은 우리 한국인들이 특히 쓰기 좋아하는 '세계최초',

 


'최고(最古, 最高)', '가장 ....'등의 접두어를 과장 없이 붙여도 좋은 것들이다.

 



 


● 구들은 '인류최초의 바닥난방' 구들은 바닥난방으로서 인류역사상 최초이다.서양의 경우 로마시대에 하이퍼코스트(Hypocaustum;Hypocaust)란 구들의 원리와 비슷한 난방방법이 있었으나 기원전 약 250년경부터 생겨났고 주로 공중목욕탕(Thermae)의 난방으로 사용되었으며, 로마의 멸망과 함께 잊혀졌다가 근대에 이르러 재발굴되어 현대 서양의 바닥난방의 기초가 된다. 또한 서양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누구나 쓰는 난방방법의 주류가 아니다.

 



 


● 구들은 '인류최초의 연기 없는 난방법?' 전통구들은 바닥난방으 로서 세계 최초

 


이기도 하지만 또한 연기없이 불을 쓰게 된 최초의 난방방법이다. 서양의 경우 10

 


세기경 까지는 모닥불의 형태로 취사와 난방을 하였다. 우리가 분위기 있게 보는

 


벽난로도 약 10세기경부터 등장 하였는데 모닥불의 형태이건 벽난로의 형태이건

 


그런 난방법에서는 힘들게 얻은 열기가 80% 이상 굴뚝이나 깔때기형으로 되어 있

 


는 지붕의 개구부로 빠져나갔다. 서양의 불 쓰는 형태에서는 사람들이 항상 연기

 


속에 시달려야 했으며, 연기를 내쫓으려면 대부분의 열기도 모두 사라지고, 열기

 


를 집 속에 붙들어 두려 하면 연기에 시달려야만 했다.

 


연기는 열기와 오랫동안 불가분(不可分)의 것이었고 열을 취함에 있어서 필요악

 


(必要惡)적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난방방법들은 난방효과면에서 얼

 


굴은 '불고기'가 되어도 등은 항상 시리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도 무릎 이하는

 


항상 시리게 된다. 실제로 중세 깊숙이 까지는 연기로 인한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서양의 집에서는 연기가 그냥 집 속

 


에 두기는 고충스러운, 그렇지만 내쫓을 수도 없는 '악동(惡童)'이었다면, 우리 조

 


상들은 바로 그 악동을 충실한 '충복(忠僕)'으로 지배했으며, 바로 그 연기를 없어

 


서는 안될 난방의 본질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불에서 연기는 배제시키고 열

 


기만을 획득하는, 즉 필터링(filtering)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였으며, 연기가 방밑

 


을 기어서 지나가는 형상이나 사람이 궁둥이 밑에 깔고 앉는 형상은 불을 말 그대

 


로 지배하고, 길들이고 복종시켰던 형상이어서 흥미롭다.

 



 


● 구들은 '최초의 축열난방(蓄熱煖房)' 에너지를 저장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계획

 


경제의 기반이요 오랫동안 풀기 어려운 난제였다. 예를 들면 벽난로나 모닥불에서

 


는 불이 타고있는 동안은 따듯할 수 있으나 불이 꺼지고 나면 곧 열기도 사라진다.

 


그러나 구들난방에서는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열이 구들장에 저장되어 장시간 방을

 


따듯하게 해주고 방이 식을 때가 되면 다시 취사를 하면서 구들장이 다시 가열되

 


고 열을 저장하는 것이다. 또한 서양의 벽난로는 불이 타고있는 동안에 한정된 일

 


시난방방식(一時煖房方式)이라면 우리의 구들은 지속난방법(持續煖房法)인 것이

 


다.

 



 


● 인류역사상 '최초의 중앙난방식(中央煖房式)' 서양에서 집을 빌려주는 광고를

 


낼 때는 난방방식이 중앙난방식이라는 것을 꼭 표시한다. 그것은 벽난로와 같은,

 


방마다 관리를 요하는 개별난방방식이 아닌,편리한 현대시설로 난방되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집세도 비싸게 받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도 한 것이

 


다. 중앙난방식의 핵심은 보일러와 라디에이터를 통하여 한곳에서 불을 때서 여러

 


방을 덥히는 것인데 구들은 이미 한 아궁이의 불로 두 칸?, 심지어 세 칸의 방까지

 


덥히고 있었으니 비록 오늘날의 중앙난방식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선조들은 일찍

 


이 중앙난방을 실현했던 것이다.

 



 


● 구들은 '난방과 취사를 이상적으로 겸한 세계 유일의 지혜' 우리의 구들은 기본

 


적으로 취사와 난방을 겸했다. 물론 아궁이만 있어서 난방만을 한 경우도 없지 않

 


지만 대개는 부뚜막을 두고 취사를 함과 동시에 잉여열기를 활용하여 난방까지 되

 


게 하는 것이 구들의 또 하나의 우수성이다. 앞에서 언급한 로마시대의 하이퍼코

 


스트 방식에서는 취사를 겸한 예는 없었고, 모닥불 형식이나 벽난로형태에서도 취

 


사가 겸해지기는 하였으나 우리의 구들에서와 같이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동시에

 


만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 구들은 '가장 이상적인 실내온도 형성' 구들은 바닥난방이다. 그리고 모든 바닥

 


난방은 실내온도형성 측면에서는 인간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보여주는 난방방

 


식으로 판명되고 있다. 예를 들어 벽난로는 하체부위에서는 차고 불기에 면하지

 


않는 부분이 늘 춥게 마련이지만 바닥난방은 그런 것이 없다. 특히 바닥에서부터

 


열기가 상승하므로 바닥과 바닥 근처의 온도는 몇도 더 높아 서양의 난방방법의

 


고질적 문제인 인체하체부위가 시리지 않아 정상인은 물론 노약자들에게도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 구들은 '자연법칙에 가장 충실한 난방법' 찬 공기는 천천히 밑으로 내려가고 뜨

 


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것은 경험으로도 아는 자연현상이다. 자연현상을 무시

 


하면 항상 무리가 따르고 추가적인 해법이 있어야 한다. 구들은 이 자연법칙을 그

 


대로 이용하여 공기순환을 이루는 대류방식으로 되어있고 고른 실내온도분포를

 


이루는 원리의 하나이기도 하다. 벽난로나 라디에이터 난방에서 무릎이 시린 것도

 


결국은 이 자연법칙의 무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6. 구들은 한민족 문화의 바탕  구들의 우수성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리고 전통구들에서의 많은 부분의 신비는 아직까지 제대로 연구도 되지 못한 채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구들을 잘 이

 


해하면 한국의 주거문화의 여러 특징들을 한꺼번에 많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많은 문화요소는 구들이 생겨난 이후에 발전된 것이며 구들은 말 그대로 우리 문화의 바탕이며 삶의 그릇이기 때문이다. 몇년전 문화체육부에서는 한국문화의 상징물 10가지를 선정 발표했다. 한복, 김치, 태권도 등 여러 가지가 선정되었지만 구들은 후보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구들은 "상징화하기가 어려워 그런 것이 아니냐"고 모 신문사 기자는 말했다. 하기야 구들은 '보이지 않는 난방'이니 그럴 법도하다.

 


또한 외국인들에게 설문을 돌려 선정했다고도 했는데 구들에서 살아보지 않

 


은 그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불'의 성능과 정취를 알리 만무하다. 초가지붕이

 


사라지고, 현대형으로 다시 지어지고, 고층아파트가 도시를 메우면서, 아름답다는

 


지붕의 처마곡선도, 정취 있는 장독대도, 마당도, 대청도 보기 드문 것이 되었다.

 


그러나 구들만은 오늘날에도 고층아파트 속에서, 단독주택에서 계승되고 있다.

 


그리고 '민족의 숨결'처럼 우리 문화의 구석구석에 스며 있다. 비록 아궁이는 보일

 


러로, 고래는 온수파이프로 바뀌고 구들이란 이름도, 그 세부명칭도, 대대로 노하

 


우를 물려받은 장인들도 함께 사라져 가지만. 구들은 가장 한국적인 특징, 가장 세

 


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아궁이, 부뚜막, 불복(부넘기), 고래, 개자리, 굴뚝, 구

 


새, 구들장, 구들장이(쟁이)- 이와 같이 구들을 이루는 각 부분의 이름과 구들에

 


관계되는 용어의 대부분은 순수 우리말로 되어있다?. 따라서 온돌이라 하지 말고

 


구들이라는 이름을 되찾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들 좀 쓸어라", "구들 좀 닦아

 


라" 또는 "구들 좀 치워라"는 소리는 어머니들의 흔한 '잔소리'에 속했다. 이로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구들은 우리의 '옛날집'에서의 바닥난방시설 그 자체를 말하

 


거나 그런 난방으로 된 방바닥 또는 방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일자리

 


를 잃고 놀고 있는 사람에게 "요즈음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빈들빈들 구들방

 


만 지키고 있지"라거나 "매일 구들장만 지고 있는 신세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구들장은 고래를 덮으며 방바닥을 이루는 판판한 판석(板石)을 말하니 하릴없이

 


늘 누어 있는 사람은 구들장을 지고 있는 것이다. IMF로 인하여 구들장을 지고 있

 


는 사람이 많았다. 사정이 어느 정도 나아져 가는 모양이어서 다행이지만 구들장

 


을 저도 따끈 따끈한 구들장을 저야 건강에도 좋고 거뜬히 일어난다. 구들장에는

 


민족의 에너지, 민족의 기(氣)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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