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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  |  김준봉  |  사진  |    |  閲?sop=and  |  â€¦Ã¬Â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논문투고Presentation Paper论文投稿 > 영문논문/英文论文
   
  한반도 남부지역의 고대 주거지 난방시설에 관한 고찰Ⅰ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10-01-02 07:39     조회 : 4654    
한반도 남부지역의 고대 주거지 난방시설에 관한 고찰Ⅰ

김 동 열
(전남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석사과정) 
정 민 호
(전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재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천 득 염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유 우 상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Abstract
인류는 불을 이용하여 추위를 이겨내고 寒帶地域까지 생활권의 범위를 확대시킬 수 있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었던 난방시설에 대해서 한반도 남부지역의 고대 주거지 내에 축조된 난방시설 중 화덕, 부뚜막, 쪽구들에 대해서 축조위치, 축조방법, 축조재료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연구방법은 발굴기관에 의해서 발간된 150편의 보고서를 분석․조사하였다. 
주제어 : 주거지, 난방시설, 화덕, 부뚜막, 쪽구들

1. 서론

1-1. 연구의 배경
인류는 불을 이용함으로써 추위를 이겨내고 寒帶地域까지 생활권의 범위를 확대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다양한 자원을 식량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불을 이용하여 보다 정교하고 강한 도구 이를테면, 토기와 철기 그리고 청동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즉,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이었던 불을 관리하는 능력 또한 발전하게 되었다.
고대 한반도는 4계절이 뚜렷하여 겨울철에는 대륙성 기후, 여름철에는 해양성 기후의 영향권 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기후에서 난방시설은 추운 겨울에 보다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인간의 생명연장에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난방시설은 시간이 흐르고 문화가 발전하면서 그 모습과 기능이 다양화되고 정교화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인류는 난방시설의 기능을 효율적이고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왔다.
본 연구에서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었던 난방시설 중 고대 주거난방시설의 형식과 축조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난방시설이 주거지 공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고찰하고자 한다.

1-2. 연구의 범위와 방법
본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이며, 공간적 범위는 현재의 남한지역으로 그 중 주거지에 축조된 화덕, 부뚜막, 구들을 중심으로 하고자한다. 일차적으로 지금까지 발굴기관에 의해서 편찬된 150개소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고대 난방시설의 근원은 노지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인공적인 시설의 흔적이 부족한 상태로 불을 피운 흔적이라 판단되어 노지를 제외한 화덕, 부뚜막, 구들에 한정하여 조사하였다. 또한 위 유구를 볼 수 있는 유적지를 조사하기 위해서 현재까지 발간된 주거지 발굴보고서 150편을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이들 보고서 중에서 화덕유구는 7개 지역, 부뚜막유구는 13개 지역, 구들유구는 11개 지역에서 발굴 조사되었다.




화덕 분포 지역
부뚜막 분포 지역
구들 분포지역
<표1> 화덕, 부뚜막, 구들 유구 분포도
본 연구에서 유구분석방법은 1차적으로 난방시설의 배치, 평면, 입면을 조사하고, 2차적으로 축조재료, 축조방법, 접착재료 등을 조사하였다.

2. 화덕 난방시설의 특징, 형식, 구조


위석형


부석형


터널형


<표2> 화덕의 유형 모식도 (참고 : 이민석,「한국 상고시대의 노시설 연구」)

보고서
지역
시대
유구 위치
E
W
S
SE
SW
N
NE
NW
C
광주 항등유적
광주광역시
삼국
3


4

9



대지리주거지Ⅱ
경남
삼국(가야)

4







무안 양장리 유적
전남
삼국
3
5



8

1

여수 고락산성Ⅱ
전남
철기






1


영광 군동유적
전남
철기
3




2



영암 선황리 유적
전남
철기-삼국
1
10
1


3


2
광주 오룡동 유적
전남
원삼국


2


4



<표3> 주거지 內 화덕 유구의 배치
화덕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터널형, 부석형, 위석형, 무시설형 등으로 나누어진다. 터널형과 부석형은 철기시대 전기에 들어와 새로이 만들어지는 형태이고 위석형, 무시설형은 청동기시대 이래의 전통으로 파악된다. 화덕의 기능은 주거내의 보온, 취사를 위하여 필수적인 시설일 뿐만 아니라, 실내조명의 역할도 함께 하였다. 또한 화덕이란 화로․풍로 등을 총칭하는 것으로 음식물을 익히고,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거나 방추차 등을 제작하여 말리거나 굽는 일에 이용되었던 시설이다.





무안 양장리유적
광주 향등유적
여수 고락산성Ⅱ
<표4> 화덕 유구 주거지 도면




석재 + 점토
토관 + 점토
점토
<표5> 축조재료에 따른 구분(참고 : 호남문화재연구원,「광주 향등유적」) 
광주 항등유적, 대지리주거지Ⅱ, 무안 양장리유적, 여수 고락산성유적Ⅱ, 영광 군동유적, 영암 선황리유적, 광주 오룡동유적 주거지 화덕유구가 조사되었다. 주거지 내에서 화덕은 동쪽 10개, 서쪽 19개, 남쪽 3개, 북쪽 26개, 남동쪽 4개, 북동쪽 1개, 북서쪽 1개 중앙부 2개 배치되어 있다. 중앙 2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주거지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고, 남쪽부분 가장자리 보다 북쪽 가장자리에 더 많이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의 건축술이 발달하지 않아 벽체로 들어오는 외기(外氣)를 차단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난방시설이 주거지 내 가장자리로 이동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화덕의 위치가 북쪽 가장자리에 많이 배치된 점은 한반도의 기후 특성상 찬공기가 북쪽에서 벽체를 통과하는 과정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난방시설을 가장자리에 둠으로서 유효공간을 중앙에 배치한 경우보다 더 넓게 확보 할 수 있다.
광주 향등유적의 경우 화덕의 축조재료에서 지주는 벽체를 보강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연소부 입구의 양 벽에 세워진다. 지주의 재료로는 석재와 토기를 이용한 경우가 확인되었으며 지주를 세우지 않은 경우도 있다.
화덕의 지주는 재료에 따라 3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첫째, 석재+점토를 이용한 경우 화덕의 벽체 축조시 양 벽에 각 1매의 석재를 세워 지주로 이용하였다. 이같이 석제를 지주로 이용한 예는 전라도와 경기도 지역에서 주로 보이며 미사리유적의 B4호 주거지를 예로 들 수 있다. 석재를 이용한 경우 여러매의 석재로 화덕의 기본 골격을 만든 후 그 위에 점토를 덧붙여 벽체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항등유적의 경우는 양벽에 각 1매씩의 석재만을 이용하여 지주로 세웠다. 둘째, 토관+점토를 이용한 경우 석재를 이용한 경우와 같은 형태로 석재 대신 토관을 이용하여 지주를 세웠다. 셋째, 점토만을 이용한 경우 지주 없이 점토를 이용하여 벽체를 세운 경우로 대부분의 화덕이 이에 속한다. 화덕 내에서 솥받침으로 이용되는 지각석은 보통 석재와 발형토기, 장란형토기의 저부가 이용된다.

3. 부뚜막 난방시설의 특징, 형식, 구조


보고서
지역
시대
유구 위치
E
W
S
SE
SW
N
NE
NW
C
강릉 강문동 철기·신라시대 주거지
강원도
삼국
1





3


고흥 방사유적
전남
삼국
1




3
2
1

고흥 신양유적
전남
철기







1

고흥 한동유적
전남
삼국





3



광주 동림동유적 II
광주광역시
삼국
7
4

2
1
14
10
33

나주 방축·상잉유적
전남
삼국
1

1


7



용인 수지 백제 주거지
경기도
삼국
1




1



익산 사덕유적 I
전북
삼국
3
3


4
25
24
16

정읍 관청리유적
전북
삼국
1




3



춘천 삼천동 순환도로 구간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강원도
철기-원삼국





1



삼국
1








함평 반암유적
전남
삼국
6
1



1



함평 성천리 와촌유적
전남
삼국





2
3


광양 칠성리 유적
전남
원삼국-삼국
1


1

1



<표6> 주거지 內 부뚜막 유구의 배치
 부뚜막은 솥을 걸 수 있도록 아궁이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턱을 말한다. 솥을 걸 수 있도록 아궁이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턱, 이것은 윈시시대 움집의 화덕에서 비롯되었다. 빗살무늬토기 문화기의 화덕은 움집 중앙부에 꾸며졌으며, 주위에 돌을 쌓은 원형내지 타원형이 대부분이었다. 무문토기 문화기에는 연기가 쉽게 빠지도록 이를 움집 한쪽에 설치하였으며 한쪽을 터놓거나 바닥에 돌을 깔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시대 후기에는 난방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한집에 2개를 마련한 일도 있다. 이와 같은 화덕이 오늘날의 것과 비슷한 부뚜막으로 발전한 것은 고구려시대에 들어와서부터로 추측된다. 서기전 1세기를 전후한 초기 고구려 유적에서 철제와 도제의 부뚜막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 무덤 벽화 가운데 부뚜막이 그려진 예도 몇 가지 있다.
강릉 강문동 철기․신라시대 주거지, 고흥 방사유적, 고흥 신양유적, 광주 동림동유적II, 나주 방축․상잉유적, 용인 수지 백제주거지, 익산 사덕유적, 정읍 관청리유적, 춘천 삼천동 순환도로 구간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함평 반암유적, 함평 성천리 와촌유적, 광양 칠성리 유적 주거지에서 부뚜막유구가 조사되었다. 부뚜막유구는 동쪽 23개, 서쪽 8개, 남쪽 1개, 북쪽 61개, 남동쪽 3개, 남서쪽 5개, 북동쪽 42개, 북서쪽 51개가 주거지 내에 배치되어있다. 부뚜막은 화덕과는 달리 중앙부에서는 유구가 발견되지 않았고, 모두 주거지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남쪽부분 가장자리 보다 북쪽 가장자리에 더 많이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뚜막 역시 화덕과 비슷한 양상으로 주거지 내에 배치된 바 기후적 요소와 유효공간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배치되었을거라 생각된다.
부뚜막 유적은 1-3세기에는 구조물이 없이 사용된 무시설식이라면 3세기 이후에는 점토나 판석 등을 이용해 보다 견고하게 축조하고 북쪽과 같은 일정한 방향을 선호하는 등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와 더불어 부뚜막은 무시설에서 조리용기와 관련한 시설과 부속유물이 발전하면서 기능도 함께 발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5세기 이후에는 부뚜막에 연도부가 추가되어 주거지 외부로 연결되는 발달한 형태의 구조도



춘천 삼천동 순환도로구간 문화유적 1호(상)주거지
함평 반암유적 19호 주거지
용인 수지 백제 주거지 4호주거지
<표7> 부뚜막 유구 주거지 도면
 등장한다.
춘천 삼천동 순환도로구간 문화유적 1호(상) 주거지(도면3)의 부뚜막은 할석으로 벽을 세우고 할석사이는 진흙으로 채웠고, 아궁이의 할석들은 붉은 진흙층에 1/3-1/4쯤 묻힌 채 세워졌고, 화구가 결실되어 분명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평면은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또한 연도(폭 약 22cm, 잔존 길이 220cm)는 화구에서 멀어질수록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조금씩 높아진다. 함평 반암유적 19호 주거지의 부뚜막은 동벽 중앙부에 인접하여 위치하고 상부 구조물은 유실된 것으로 판단된다. 아궁이부와 연소부 바닥면, 벽체등 일부 구조만 남아있는 상태이며, 축조 재료는 점토를 이용하였다. 그리고 용인 수지 백제 주거지 4호 주거지의 부뚜막은 크고 작은 할석에 점토를 발라 축조하였다. 그것들은 불에 그을린 채, 마치 3렬 종대의 형태로 동쪽을 향해 수직에 가깝게 서있다.

4. 쪽구들 난방시설의 형식, 특징, 구조

현재 주거지에서 사용되고 있는 난방시설은 방 안 전체에 걸쳐 고래와 고래둑을 만드는 것으로 온돌(溫突, 溫堗 , 煖堗, 燠堗, 燠室, 長炕) 또는 구들이라 부른다. 그러나 고대 주거지 난방시설 중 구들은 주거지 내부 일부분에만 시설되어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고대 구들을 신영훈은 쪽구들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제안하였다. 이는 후대의 온돌이나 구들과의 연계성을 쉽게 연상 할 수 있고, 전체가 아닌 ‘쪽’(부분)난방이란 사실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발굴보고서에는 구들이라고 명기되어 있지만, 이하 쪽구들이라고 하겠다.
창원 가음정동유적, 고려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지 조성부지내 고령 지산동유적, 김해 봉황동 저습지 유적, 늑대 패총, 영천 청정리유적, 장흥 지천리 유적, 진안 용담댐 수몰지구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Ⅲ, 청원 남성곡 고구려 유적, 광양 칠성리 유적, 서둔동 유적 주거지에서 쪽구들 유구가 조사 되었다.
구들의 위치는 동쪽9개, 남쪽3개, 북쪽5개, 북동쪽10개, 북서쪽4개, 남동쪽6개로 주거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화덕과 부뚜막이 점단위로 위치하고 있다면 쪽구들은 선단위로 위치하고 있다. 즉 쪽구들의 배치가 화덕이나 부뚜막에 비해서 북쪽에 편중되는 성향이 약한 이유는 선단위 축조에 의해서 보다 넓은 공간에 난방을



늑도패총 A지구·주거군 나-41호
장흥 지천리 유적 나지구 18호 주거지
 고령 지산동유적 1구역 주거지 18호
<표8> 구들 유구 주거지 도면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쪽구들의 평면형태를 보면 ‘ㄴ‘형, ‘T’형, ‘ㄱ’형, 고상(孤狀)형, ‘ㅡ’형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쪽구들의 형태는 주거지의 평면의 형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직선이 강조된 주거지의 쪽구들은 직선이 강조된 형태이고, 곡선이 강조된 주거지의 쪽구들은 곡선이 강조된 형태이다. <표10>를 보면 원형의 주거지에서는 고상(孤狀)형의 쪽구들이 축조되고, 말각형, 방향, 장방형 주거지는 ‘T’형, ‘ㄱ’형, ‘ㅡ’형, ‘ㄴ‘형의 쪽구들이 축조되었다.
구들고래 단면은 외줄고래의 경우 ‘ㄱ’형, ‘ㄇ’형, ‘U’형, 두줄고래의 경우 'W'형이 조사되었다. 구들고래 단면의 조성은 축조재료와 구들고래와 벽의 상관관계에 의해서 조성되었음 생각할 수 있다. ‘ㄱ’형 고래의 경우 고래 지주의 축조가 한쪽은 활석을 사용하고, 반대편은 벽체에 의해서 축조되거나 벽체 부근에 점토를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또한 구들의 축조재료를 보면 대부분 할석에 점토를 발라서 축조되었다. ‘ㄇ’형, 'W'형은 ‘ㄱ’형과는 달리 지주가 모두 할석을 사용하여 축조되었다. 반면 ‘U’형의 경우는 지주를 축조하지 않고 땅을 파서 덮개돌을 얹어 축조하였다.





‘ㄇ’형 Ⅰ
‘ㄇ’형 Ⅱ
‘ㄱ’형 고래
‘U’형 고래
<표9> 구들고래 단면 모식도 


번호
지역
시대
편호
주거지 평면
구들
평면
단면
고래
위치
재료
A
경남 창원
청동기
주-3
원형
‘ㄴ‘형
-
2
NE
․할석(고래)
B
경남 고령
삼국
주-2
말각방형
‘T’형
-
-
N
․할석(고래)
주-9
방형
‘T’형
-
-
E
․할석(고래)
주-13
타원형
‘T’형
-
-
N
․할석(고래)
C
경남 김해
6-8C
수-1
부정형
‘ㄱ’형
-
-
E
․할석(고래)
D
경남 사천
청동기- 삼한
가-11
원형
‘ㄱ’형
‘ㄱ’형
1
E-S
․판석
가-17
방형
‘ㄱ’형
‘ㄱ’형
1
E
․점토+온돌석
가-24
부정형
-
‘ㄱ’형
-
NE
․황색고운점토+온돌석
가-50
말각방형
-
-
1
SE
․판석
가-65
원형
-
‘ㄇ’형
1
E
․적갈색점질토+지지석
가-66
원형
-
‘ㄇ’형
-
E
․판석
가-72
원형
-
‘ㄇ’형
-
E
․판석
가-75
반원형
-
‘ㄇ’형
-
SE
․판석
가-78
원형
-
‘ㄱ’형
1
NE
․점토/판석
가-79
원형
-
‘ㄇ’형
2
E
․점토+판석
가-93
타원형
-
‘ㄱ’형
1
N
․점토/판석
나-5
타원형
-
‘ㄇ’형
-
S
․판석
나-24
원형
-
‘ㄇ’형
-
E
․문무토기 동체부편
 (고래의 뚜껑)
나-30
원형
고상형
‘ㄱ’형
1
N-SE
․점토+벽석
나-35
원형
-
-
-
N-E-S
․점토+판석
나-36
원형
고상형
-
-
W-N
․점토/판석
나-38
원형
-
-
-
S
․황색점질토+벽석
나-39
원형
-
-
-
S
․점토(고래)
나-41
원형
고상형
‘ㄇ’형
-
NW
․황색점토+온돌석
 (고래)
나-52
원형
고상형
-
1
SE-S
․적색점토+온돌석
나-64
방형
-
‘ㄱ’형
-
SE
․황색점토(벽체보강)
나-65-1
방형
고상형
‘ㄱ’형
1
NE-N
․점토/판석
다-2-3
트랙형
-
-
2
NW-S
․판석(고래)
다-2-4
원형
-
‘ㄱ’형
1
-
․점토+토기편+판석 (고래)
E
경북 영천
청동기
수-2
-
‘ㄴ‘형
-
2
E-W
․적석
삼국
석-1
-
-
-

NE
․할석
F
전남 장흥
철기
-삼국
주-18
방형
‘ㅡ’형
'W'형
2
N
․판석
주-20
장방형
‘ㄱ’형
‘ㄇ’형
1
E-NE
․판석
G
전북 진안
청동기
주-B1
-
‘ㄱ’형
-
-
N-E
․할석+천석
주-B3
-
‘ㄱ’형
-
-
W/S

H
충북 청원
삼국
도-118
마름모꼴
-
-
-
-
․판석
I
서울 미사리
원삼국
주-A1
呂자형
‘L’형
-
-
E
․점토+강돌(아궁이)
․붉은 점토+강돌(연도)
․나무(굴뚝)
J
수원 서둔동
청동기-철기
주-7
방형
-
-
-
E-W
․논흙(아궁이)
․븕은 진흙(구들)
K
전남 광양
삼국
주-12
장방형
‘ㄱ’형
‘U’형
1
W-NE
․판석
<표10> 주거지 內 구들 유적

5. 결론

고대의 난방시설은 노(爐)에서 화덕, 부뚜막, 쪽구들로 추운 겨울을 더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하여 그 모습과 기능이 다양화되고 정교하게 발전하였다.
난방시설의 형식 및 특징은 유구의 주거지 내 위치, 유구 평면, 축조방법, 축조재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난방시설의 주거지 내 위치를 보면, 초기에는 주거지 내 중앙에 위치하고, 이후 주거지 가장자리로 이동된다. 이러한 이유는 주거지 내 유효공간 확보와 추운 겨울철 더 실내를 안락하게 위함으로 생각된다. 실내 가장자리로 이동한 난방시설은 벽으로 들어오는 찬 외기를 순화시켜주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다음으로 난방시설의 평면을 보면, 점단위 평면에서 점차 선단위 평면으로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점단위 평면의 대표적인 예로는 노(爐),화덕을 들 수 있고, 선단위 평면으로는 쪽구들을 들 수 있다. 부뚜막의 경우는 연도가 발달하여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난방시설의 축조방식은 무시설식에서 시설식으로 발달하고, 규모가 커지고 기능이 다양화 되었다. 유구의 지주를 보면 활석을 땅에 묻거나 묻지 않게 세우는 방법이 있고, 활석 대신 점토를 사용하거나 지주가 없는 경우가 있다. 또한 그 기능이 초기에는 불을 피워 실내 난방을 하는 기능이 점차 조리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어 발달되었다. 일부 유구에서는 난방기능과 조리기능을 분리하여 실내에 축조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난방시설의 축조재료를 보면 지주의 경우 활석을 이용하는 예가 대부분이며, 일부의 경우 점토를 이용하였다. 또한 점토를 사용하여 접착재료로 사용하거나 미장재료로 사용한 예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덮개돌의 경우 지주와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와 토기를 이용하여 축조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1. 창원대학교박물관,『창원 가음정동유적』, 2001.
2. 미사리선사유적발굴조사단․경기도공영개발사업단,『미사리』, 1994.
3. 재)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고령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지 조성부지내 고령지산동유적』,  2007.
4. 익산대학교박물관,『김해 봉황동 저습지유적』, 2007.
5. (사)경남고고학연구원,『늑도패총』, 2003.
6. 영남문화재연구원,『영천청정리유적』, 2001.
7. 목포대학교박물관․한국수자원공사,『장흥지천리유적』, 2000.
8. 국립전주박물관․진안군․한국수자원공사,『진안 용담댐 수몰지구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Ⅲ』,  2001.
9. 충북대학교박물관,『청원 남성곡 고구려유적』,  2004.
10. 순천대학교박물관,『광양 칠성리유적』,  2007.
11. 창원대학교 박물관,『창원 가음정동유적』,  2001.
12. 서울대학교박물관,『한국고고학연보』,  1981.
13. 강원문화재연구원,『강릉 강문동 철기․신라시대 주거지』, 2004.
14. (재)호남문화재연구원,『고흥 방사유적』,  2006.
15. (재)호남문화재연구원,『고흥 신양유적』,  2006.
16. (재)호남문화재연구원,『고흥 한동유적』,  2006.
17. (재)호남문화재연구원,『광주 동림동유적Ⅱ』, 2007.
18. (재)호남문화재연구원,『나주 방축․상잉유적』, 2006.
19. 한신대학교박물관,『용인 수지 백제주거지』,  1998.
20. (재)호남문화재연구원,『익산 사덕유적Ⅱ』,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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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재)호남문화재연구원,『함평 반암유적』, 2007.
23. 전남대학교박물관․한국도로공사,『함평 성천리 와촌유적』, 2007.
24. (재)호남문화재연구원,『광주 향등유적』, 2004.
25. 동의대학교박물관,『대야지주거지Ⅱ』, 1989.
26. 목포대학교박물관․무안군․한국도로공사,『무안 양장리유적』, 1997.
27. 여수시․순천대학교박물관,『여수 고락산성Ⅱ』, 2004.
28. 목포대학교박물관․한국도로공사,『영광 군동유적』, 2001.
29. 목포대학교박물관․영암군,『영암 선황리유적』, 2004.
30. 전남대학교박물관․전라남도,『주암댐 수몰지구 발굴조사보고서Ⅳ』, 1989.
31. 송기호,『한국 고대의 온돌』,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32. 신영훈,「우리문화 이웃문화」, 문학수첩, 1997.
33.  (재)호남문화재연구원,「함평 노적유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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